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이른바 ‘관식이 신드롬’이 일어났다. 어찌나 이 신드롬이 셌던지 ‘애순이 신드롬’도 같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급기야 ‘학씨 신드롬’까지 생겼다. 드라마에 나왔던 인물들이 이렇게 재조명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시작된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 중반쯤이다. 장소는 제주도에 맞추어 두었으나 전체적으로 그즈음 태어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고애순이라는 자기 주관 강한 여성과 그 여성을 평생 사랑하며 무엇이건 애순이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주고야 마는 양관식을 조명한 것이 이 드라마의 주요 줄거리다.
특히 관식이의 덤덤한 듯하지만 어김없는 헌신이 어찌나 감동스러운지 아내에게 정성스런 남편들이 모두 관식이로 칭송되는 유행이 생겼다. 문제는 아내가 관식이라고 인정하면 괜찮은데 대부분 아내들은 남편들을 향해 관식이 보다는 ‘학씨’라고 단정하면서 집집마다 갑론을박 헤프닝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관식이는 따지고 보면 아내에게만 헌신적이지 않다. 그렇지 않은 양하면서도 부모에게나 자식들에 대한 정도 한없이 깊다. 늘 빠듯한 형편이라 풍족하게 뒷받침 못 해주는 것이 한일 뿐이다. 아마도 50년대 생 남성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관식이는 은근히 동네 사람들 속에 깊이 스며 있다. 애순이가 마음 놓고 어촌계 활동할 수 있었던 6할의 공도 사실은 관식이의 포용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키 포인트로 그 시대 남성들의 성공 요인과도 직결된다. 디지털 문명 이전, 순수 아날로그 세대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회생활의 요체는 인적 네트워크였다. 관식이는 묵묵하게 일하는 가운데 동네 사람들의 인심을 꾹꾹 눌러 쌓았던 것이다.
관식이와 대비되는 인물이 ‘학 씨~’로 표현되는 부상길이다. 이 드라마 최고의 악역인 부상길은 일찌감치 자수성가한 욕심 많고 고집 세고 안하무인인 캐릭터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자신을 조금씩 누그러뜨리는 전형적인 50년대 출생 남성상이다. 경제력이 대부분 사회생활의 중심인 시대 부상길은 동네의 중심적 인물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아무에게나 함부로 대하는 특권을 주입시키며 살았는데 그게 바로 수시로 내뱉는 ‘학 씨~’라는 의성어다. 기분이 뒤틀릴 때마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학 씨~’는 단순히 부상길의 성격을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 50년대 생 남성들의 근원적인 품성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6.25가 끝난 후 한층 강해진 종족보존 의식은 남아선호사상의 절정을 이룬바, 관식과 상길은 바로 그 정점의 인물들이다. 그 특권의식은 50년대 남성들 모두에게 골고루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이 특권 속에 양관식은 은근한 내적 소통을 키우며 갈수록 단단해진 반면 부상길은 초기의 완고함을 시간에 따라 허물며 결국 두 사람이 비슷한 선상에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이것이 이 드라마가 숨기고 있는 가장 탁월한 반전이다. 자신을 관식이라 부르는 남성들에게 ‘관식이보다 학씨’에 가깝다고 해도 크게 기분 나빠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지고 보면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이 관식이와 애순이 부부의 삶이었을 것이다. 남이 정한 세상의 잡다한 법칙이나 관습은 무시하고 자기식대로 사는 것이 50년대생 남녀들의 로망 아니었을까.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게 살지 못했기에 이 드라마가 그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관식과 애순의 삶도 겉으로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지만 근원적 애환은 무시하지 못하는 뻔한 삶에 자주 무릎 꿇기도 한다. 딸의 행복을 위해 억지로 굴욕을 참는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내고 늘 허덕이는 삶에 쫓기는..., 그게 다름 아닌 보통 50년대생 사람들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공감대가 커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가 근원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이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 어머니들에 대한 헌정 아니었을까? 세계 역사상 가장 빈국이었던 50년대에 태어나 6~70년대 경제개발의 삶을 살았고 8~90년대 부국의 발판을 이룩했고 마침내 2000년대 OECD세상을 이루었고 2020년대 삶의 황혼에 이른 가장 역동적인 세대들. 그들에게 바치는 한 마디가 있다면 다름 아닌 이 말이었을 것이다. ‘50년대생 아버지 어머니들,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