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무영탑』 - 아사달과 아사달의 탄생
아사달과 아사녀가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로 알고 있지만, 삼국유사를 비롯한 역사서에는 찾아볼 수 없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등장은 빙허(憑虛) 현진건(1900~1943)의 소설 『무영탑(無影塔)』에서 기원한다. 1938~1939년 동아일보에 총 164회 연재를 거쳐 1939년 9월 소설 『무영탑』(박문서각)을 출간했다. 현진건은 소설을 쓰기 전 1929년 경주 순례를 하고 동아일보에 「고도순례 경주」를 연재하기도 했다. 소설 무영탑의 사전답사 또는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석가탑을 일명 무영탑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기록은 일본 동경도서관에 보관된 「불국사 고금창기」에 나온다. 조선 영조 16년(1740) 동은(東隱) 화상이 지었으며, 불국사의 역사적 배경과 건축물에 대한 자세한 기록과 함께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진건은 소설을 쓰면서 당나라 석공을 백제 석공으로, 자매에서 부부로 바꾸면서 주인공의 이름 아사달과 아사녀를 가져왔다.
학자들은 고조선의 수도로 전해지는 지명이기도 한 아사달이 고조선의 국호인 ‘조선’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아사’는 ‘아침’, ‘달’은 ‘땅’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아사달은 ‘해가 뜨는 땅’이라는 뜻으로 즉 우리나라를 이르는 말이다. 이와 같이 현진건이 아사달과 아사녀를 소설에 등장시킨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1936년까지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한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 생계를 위해 양계업을 하면서 『무영탑』을 저술했다. 설화를 바탕으로 역사소설을 쓰게 된 된 배경에는 일제와 타협을 거부한 애국심이 존재한다. 역사와 전설을 변형시켜 일제 군국주의의 암담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신동엽 시인의 시집 『아사녀』 - 가장 순수하고 정직한 한국인의 표상
신동엽 시인(1930~1969)이 아사달과 아사녀를 시편 전면에 등장시킨 것도 현진건의 삶과 문학정신과 무관하지는 않다. 불국사 석가탑을 조성하러 서라벌에 온 백제 석공과 그의 여인 아사녀는 신동엽 문학 작품 어디에서든 주인공이다. 거짓 없이 오로지 순수하고 진실된 평등과 평화를 상징하는 한국인 표상이다.
1963년에 첫 시집 『아사녀』가 출간되었고, 이 시집 속에는 또 「아사녀(阿斯女)의 울리는 축고(祝鼓)」를 비롯하여 시집에 등장하는 아사녀는 민중을 대표하는 역사성을 가진 인물이다. 1967년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장편 서사시 『금강』과 『신동엽 전집』 속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인의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는 시와 때를 달리해서 읽어도 좋은 시이다.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중립(中立)의 초례청(醮禮廳)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위 시는 신동엽 시인이 37세 무렵에 쓴 시로 사월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월혁명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시다.
시뿐만 아니라 신동엽 시인은 오페레타 『석가탑』이 1968년 5월 백병동 작곡으로 드라마센터에서 상연되었다. 시극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음악, 무용 등을 수용한 공연예술로 다양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신동엽 시인에게 있어 아사녀는 동학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다. 그의 장편서사시 『금강』 속 아사녀는 동학이 탄생한 경주로 다시 돌아왔다. 불국사 인근 영지 설화공원에는 신동엽의 오페라타 『석가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 「너를 새기련다」를 새겨놓고 있다.너를 조각하련다 너를 새기련다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이 하늘 끝나는 날까지이 하늘 다하는 끝 끝까지찾아다니며 너를 새기련다바위면 바위에 돌이면 돌몸에미소 짓고 살다 돌아간 네 입술눈물 짓고 살다 돌아간 네 모습너를 새기련다(이하 생략)
박정만 시인의 「떠오르는 탑」 - 미완성 장편 사설시
박정만(1946~1988)은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불행한 삶을 살다간 시인이다. 고문 휴우증, 술, 건강 악화, 불행한 가정생활 등 고단한 삶이 고스란이 드러나는 『박정만 시전집』 초판본(1990년 외길사 간) 700페이지를 통째로 읽으면서 필자는 가슴이 먹먹했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책을 다시 펼치니 ‘1995년 1월 9일 서울 강동 성심병원에서 일독’이라는 메모의 흔적이 남아 있어 감회가 새롭다. 얼마 남지 않았던 삶을 예감하며 뜨겁게 쏟아낸 시편들에 감응해서 몇 편의 시를 썼고, 정읍 내장산 인근에 있는 시비를 찾아 소주 한잔을 올리고 오기도 했다.
그의 시전집 속에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장편 사설시 「떠오르는 탑(塔)」 이 수록되어 있다. 1987년 《월간문학》에 연재하다 중단된 채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작품들이다.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시인은 왜 하필 아사달과 아사녀를 노래했을까?
제1편 「꽃피는 서라벌」에서 34편 「불국사 산책」 이르기까지 총 3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모두 아사달과 아사녀에 대한 설화를 차용하여 자기 색깔로 형상화하였다. 이 가운데 「아사녀의 편지」라는 시를 몇 줄 인용해 본다.서방님,제게 (藥) 한 첩만 지어 주세요바람편에 쉬이 오는 기별,좋으나 나쁘나 잘 계시다는한 두어 자 소식만 들으면얼마쯤 속이 냉(冷)해질 것 같은데요서라벌이 여기서 얼마나 먼지는 모르지마는머리털 엮어 가는 저승의별에서 여기 오는 거리만큼은도지 못하겠지요(이하 생략) 자신의 처지를 대상을 바꾸어 시인의 아픔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시전집은 1993년 같은 출판사에서 『다시 눈 뜬 아사달』 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되었다. 표지에는 1989년 현대문학상, 1991년 지용문학상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 재발간의 의의로 여겨진다. 고통스런 삶에 뒤따른 불꽃같은 시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아무튼 박정만 시인이 시로 찾아나섰던 아사녀는 따뜻함을 가진 모성, 아픈 이마를 짚어줄 순수한 여성이 아니였을까.
우리 시대의 아사달과 아사녀
불국사를 배경으로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은 시대를 달리하며 재해석으로 재탄생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녀의 애달픈 사랑이야기가 설화에서 시작되었지만 작가들은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현진건은 아사달과 아사녀를 통한 일제강점기를 역사인식과 시대적 현실을, 신동엽은 동학과 4.19혁명이라는 현대사의 중심에서, 박정만은 국가권력에 희생된 한 인간의 아픔을 아사달과 아사녀를 통해 대변했다.
아사달과 아사녀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순수한 남자와 여자이다.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줄 아는 사람이다. 현진건과 신동엽 그리고 박정만의 아사달과 아사녀는 각기 다른 사람이 아니다. 남과 북, 동과 서, 이념과 사상을 넘어선 대한민국 사람이다. 순수를 지향하되 불의에 저항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바로 우리 이웃의 너와 나와 다르지 않은 보통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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