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마트 시대다. 국가별 스마트폰 보급률(2024 기준)을 살펴보면 대한민국(95%)이 단연코 1위다. 우리 밑으로 노르웨이(92%), 아이슬란드(90%) 순이다. 우리나라는 빠른 인터넷 속도와 5G 기술 도입으로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다. 하교하는 초등학교 학생들만 보더라도 목에는 어김없이 스마트폰이 달랑거리고 있다. 친구들과 채팅하고, 시간 맞춰 학원 간다고 엄마한테 전화도 하며, 길에서 이쁜 고양이라도 보면 사진을 찍는다.
스마트폰 보급률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둘러싼 맥락이다. 일단 보급률이 높다는 건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의미다. 사회 인프라가 튼튼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사회적 디지털화가 잘 갖춰져 있다는 뜻도 된다. 공공 서비스나 금융, 쇼핑 등 디지털 플랫폼이 보편화되어 있다는 뜻일 테니까. 근데 문제는 ‘누구나’ 스마트해졌다는 점이다.
복잡한 요즘의 한국 정치 역학관계에서 활짝 피지도 못한 채 삶을 접은 여배우에 이르기까지 모든 뉴스를, 온 국민이, 죄다 알고 있다. 근데 이게 왜 문제냐고? 뒤집어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이 일률적으로 스마트한 사회에서 스마트함은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예물 반지로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새색시 앞에서 “진정해 이모, 탄소 원자들이 강하게 결합된 게 다이아몬드고, 무질서하고 약한 결정 구조를 가진 게 석탄이야” 하고 조카가 말했다 치자. 맞장구는커녕 그저 ‘반짝이는 탄소’에 웬 호들갑이냐는 어린 조카와 함께 사는, 세상이 과연 좋을까! 정보는 희소성이 있을 때 가치를 가진다.
처음 챗GPT가 나왔을 땐 정말 신세계가 열리는 줄 알았다. 세상 모든 지혜를 가진 현자와 대화하듯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유려하고 적절했으며 맥락이 잘 맞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지는 건 AI의 대답이 늘 모범적이고 도덕 선생님 훈시처럼 심심하다는 거다.
그 비밀은 LLM(Large Language Model:대규모 언어 모델)에 있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양의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확률을 계산하는 식으로 인간의 언어를 배웠다. 가령 ‘고양이’라는 단어 뒤에는 ‘무섭다’보다 ‘귀엽다’라는 단어가 쓰일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따라 한 인공지능의 답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고 창의적이지도 않다.
스마트함에 목매는 건 우리가 근원적으로 스마트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마음속으로 ‘이건 나만 알고 있는 비번(비밀번호)이야’ 하며 설정해 놓은 번호가 죄다 ‘12345’다. 더 치밀한(?) 사람의 비번은 ‘1234567’다. 보안업체가 선정한 최악의 비밀번호 1위가 ‘12345’란다. 냉전 시절에 미국의 지하 격납고에 저장된 핵미사일 발사 비번도 ‘00000000’이었다니 말 다 했다. 그것도 무려 15년 동안이나!
스마트하지도, 또 스마트해질 수도 없는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온 게 페이스 페이(face pay)아닐까 싶다. 글자 그대로 얼굴 인식 기술을 활용한 결제 시스템이다. 왜 하필 얼굴이냐고? 사람 얼굴은 사람 수만큼 다 다르니까 개인화가 가능하다. 얼굴에서 읽어낸 혈류량이나 비율 등의 생체 신호는 복제가 불가능한, 그 자체로 완벽한 비밀번호다. 가장 기본적이고 평등하며 개성적이다. 주변 GS25나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에 도입한 토스의 페이스페이는 정확도가 무려 99.99%라고 한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대통령 권한 대행이던 국무총리를 탄핵 소추해 끌어내리려고 했다. 대행의 대행까지도 탄핵으로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임기 만료인 헌법재판관 직무를 연장할 수 있게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금은 재판관이지만 특정 후보를 임명하지 않으면 국무위원들을 연쇄 탄핵하겠다고 으름장도 놓았다.
면목(面目)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평면적으로는 얼굴 생김새라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남을 대할 만한 체면’이란 뜻이다. 남의 부끄러운 짓에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얼굴 속 실핏줄의 흐름마저 읽어낼 정도로 스마트한 세상이지만, 얼굴 뒤에 숨은 ‘면목 없는’ 속내까지는 읽어내지 못하니 못내 아쉽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의 면목을 스스로 돌보고 지켜내지 못한다면 세상이 앞으로 갈수록 우리는 뒤로 갈 뿐이다. 그러니 오늘날 스마트함의 의미를 ‘체면을 차릴 줄 아는 능력’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내 행동이 남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스스로 아는 능력은 동물도 인공지능도 할 수 없는, 우리만의 진정한 스마트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