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주 전 늘 친하던 형님이 아들 결혼식을 맞았다. 전화로 결혼식에 초대하셨는데 말씀이 남달랐다. “스몰 웨딩(작은 결혼식)을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너는 와야지 싶어서 전화했다” 형님 말씀이 내가 아들을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고 장성해서도 자주 만났던 만큼 적어도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줄 것이라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일부러 초대해 주신 것이 고맙고 조카의 결혼식도 축하하고 싶었다. 또 스몰웨딩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서울로 갔다. 결혼식은 서울의 전통음식점으로 유명한 삼청각이었다. 야외에서 결혼식을 하고 홀로 들어가 식사를 겸한 2부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초대받은 사람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형님과 형수님은 정말 두 분의 양가 가족만 부르셨고 형님 지인으로는 어릴 때 친구 한 분과 나를 비롯한 후배 여섯 명만 부르셨다. 조카도 가장 친한 친구 몇 명만 불렀고 상대 신부측도 그렇게 초대된 듯 하객이 적었다. 뒤에 여쭈어보니 양가가 공히 50명으로 한정해 하객을 초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형님이 평소 다른 분들 경조사에 소홀하거나 인맥이 남보다 못하지 않다. 경주고 서울 동문회에서 사무국장을 지낼 만큼 활약하셨고 지금도 자문위원으로 왕성히 활동하는 분이다. 그런 형님이 청첩도 하지 않고 심지어 결혼식 사실을 오늘 온 하객들 이외에는 알리지도 않았다. 혹여라도 근처 지인들이 알게 될까 봐 비밀 유지를 당부하기도 하셨다. 형님의 뜻은 결혼식 한답시고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 싫었고 정말 마음으로 축하해줄 사람들만 초대하는 것이 현대적 결혼관에 옳다고 느꼈다는 것이었다. 형님 역시 이렇게 결정하는데 한달 가까운 고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다른 것보다 아들 결혼식을 하면서 부르지도 않았다고 서운해할 지인들의 원망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경조사에 참석하면서 냈던 부조금이 아깝지 않았느냐고 농으로 여쭈었더니 그에 대해서는 오히려 깔끔하게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건 그 자체로 의미 있었으니 이번 결혼과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와 대비된 결혼식도 있다. 고위 공직에 있던 어느 지인이 자기가 퇴임하기 전에 딸을 결혼시키겠다고 서둘러 날짜 잡고 결혼식을 진행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분과 꽤 친분이 있었던 나는 경주에 와 있는 핑계를 대고 축의금만 보냈을 뿐 결혼식에 가지는 않았다. 그때 든 생각이 어차피 상호부조인데 돈만 보내는 것이 혼주에게 유리하겠다 판단한 것이다. 그런 마음 한편에는 굳이 퇴직을 고려해 자식의 혼사를 서두르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잠깐 들었다. 이른바 ‘현직’이란 것은 따지고 보면 갑질이다. 현직에 있을 때 자식을 결혼시켜야 하객이 많이 올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축하보다는 부조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 결혼식에 가지 않은 것도 바로 그런 추측에서다. 그리고 그분에 대해 딱히 다른 생각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평범한 세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나 역시 아들의 결혼식이 현실화 되고 있다. 나 자신에게 과연 형님처럼 할 수 있겠느냐 물어보니 의외로 대답하기 어렵다. 물론 결혼식을 어떻게 할지는 아들이 직접 결정하도록 했으니 우리 부부는 아들의 결정에 따를 것이다. 그러나 아들 결혼식에 초대할 인명부를 큰 틀에서 결정해두었다. 그것은 아들이 지금까지 함께 만나 여행하거나 술이나 밥이라도 먹는 등 어릴 때부터 잘 아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중요하고 나와 친분이 있어도 아들이 모르는 누구라도 초대하지 않을 예정이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양가의 혼주들이 아니고 결혼 당사자들이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의 지인들이 왕창 찾아와서 형식적인 축하조차 건네지 않고 바로 밥먹으로 달려가는 이 어쭙잖은 모습은 시간 낭비이자 비용 낭비다. 그 형님의 결혼식에 초대된 형님의 지인들 모두 형님의 아들을 잘 알고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하는 나를 비롯한 형님의 지인들과 그들을 향해 환하게 웃는 신랑을 보고 진심으로 기쁘고 대견했다. 축하도 이렇게 하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대단히 큰일이 아니다. 나부터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을 줄이는 것이다. 작지만 그게 개혁이고 혁명이다. 형님이 먼저 보여주신 개혁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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