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일 년에 꼭 두어 번은 경험하는 ‘잠 못 드는 밤’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문제는 커피였다. 와이프가 어디서 선물 받은 커피인데 향이 너무 좋다며 유혹하길래 넙죽 받아마셨던 게 화근이었다.
잔다고 누웠는데 쉬이 잠이 오질 않는다. 뒤척여도 보고 베개 높이를 조정해도 본다. 옆에서 규칙적으로 숨 쉬던 와이프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 숨소리가 멈췄다. 느낌이 이상하길래 몸을 돌려 확인하려는 순간, 아뿔싸! 나직이 코 고는 소리로 바뀌었다. 커피로 날 유혹해 놓고는 정작 본인은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니! 아내가 덮은 이불이라도 슬쩍 제쳐놓을까 싶다가 그냥 방을 나왔다.
침묵이 흐르는 거실엔 어둠과 나만이 덩그러니 앉았다. 낮에 얼마나 열심히 일들을 했는지 주변을 둘러싼 가전제품들이 이따금씩 딱! 틱!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이 녀석들도 금방 곯아떨어지겠지?’ 이들을 방해해선 안 되겠다 싶어 또 거실 옆 공부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노트북 전원을 눌렀다. 뭐 ‘베개에 머리를 대는 순간 곯아떨어지는 비법’ 같은 게 없을까 하고 인터넷을 뒤져본다. 다행히 흐릿한 내 눈을 끄는 제목의 영상이 하나 있었다. 바로 “2분 안에 잠드는 법!”이다. 더욱 확신이 들게 만드는 건 ‘전장(戰場) 속 군인들이 꿀잠에 빠지는 법’이라는 설명 문구였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이 영상의 주인공은 4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저스틴 어거스틴(Justin Agustin)이다. 내 의심의 눈초리는 조회수를 확인하자마자 아주 그냥 확 순해졌다. 무려 11,334,159회(2022 기준). 충혈된 내 두 눈이 갑자기 번쩍 뜨인다. ‘적어도 이 숫자만큼의 전 세계 사람들이 불면이 밤을 지새우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오싹해진다.
어거스틴은 영상에서 이 기술은 군인들을 위해 개발되었다고 했다. 군인은 특성상 매우 불편하고 소음이 많은 전장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그런데 하물며 생명에 직결된 미션을 수행하는 군인들이 잠을 설치거나 불면증에 시달린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그의 꿀잠 자는 비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먼저 얼굴의 근육을 이완한다. 깨어있는 동안 과하게 집중했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통 이마가 찡그려져 있다. 이 부분을 시작으로 눈을 거쳐 혀, 턱으로 내려오면서 각 부분에 쏠린 힘을 뺀다. 다음은 어깨다. 어깨를 최대한 아래로 떨어뜨리면 목 주변 긴장도 자연스레 풀린다. 어깨에서 이어진 팔을 거쳐 손목, 손바닥과 손가락까지 천천히 이완한다. 다음은 숨을 내쉬면서 가슴의 힘도 뺀다. 긴장을 풀기가 어렵다면 반대로 힘을 주었다가 풀면 더 잘된다. 자, 마지막으로 다리다. 허벅지에서 무릎을 거쳐 종아리, 그다음 발목과 발로 집중을 옮기며 힘을 뺀다. 이 훈련의 핵심은, 마치 온몸이 해파리가 된 것처럼 축 늘어질 정도로 이완하기다.
꼭 누워서 할 필요도 없다. 실제 군인들은 의자에 앉아서 훈련했다. 일반인도 비행기, 버스, 기차 등 어디에서든 할 수 있다. 바로 곯아떨어지지 않더라도 결코 실망하지는 말자. 군인들도 이 기술을 마스터하는데 꼬박 6주가 걸렸다고 한다.
효과를 더 보려면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이는 잔잔한 호수 위에는 카누가 떠 있고 그 안에 누워있는 본인을 상상한다. 너무 햇빛이 강하다 싶으면 깜깜한 방에 검은 벨벳 해먹(hammock:나무 그늘 같은 곳에 달아매어 침상으로 쓰는 그물) 위에 누워있는 상상도 좋다고 한다(자꾸 어릴 적 졸업앨범 재질이 생각나서 이건 실패했다). 그래도 잡생각이 일어난다거나 주의가 분산될 기미가 보이면 마음속으로 ‘생각하지 말자’를 10초 동안 반복한다. ‘어? 이건 여태의 이완 모드랑 좀 결이 다른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지만, 꾸준히 연마했던 군인들 중 자그마치 96%가 2분 안에 곯아떨어졌다고 하니, 나의 괜한 걱정인 모양이다.
수면을 단순히 휴식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기들은 하루에 거의 16시간을 잔다고 한다.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청소년들은 9시간, 성인도 7~8시간 정도의 수면이 추천된다. 건강한 삶을 위해 충분한 잠은 필수니까.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바쁜 일상과 가중되는 스트레스로 현대 사회는 또 다른 전장이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약 20%의 인구가 수면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각자의 싸움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제 숙면은 생존 전략이다. 오늘 삶의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난 이제라도 자야 한다.
축~ 처진 해파리 한번 되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