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홍보하는 자료를 보면 항상 그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와 함께 넓고 화려한 대로가 등장한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뉴욕의 브로드웨이, 런던의 옥스퍼드 서커스, 도쿄의 긴자 등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리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길을 걸어보면 그저 화려한 간판과 바쁜 사람들 그리고 비싼 상점들만이 가득할 뿐이다. 사진을 찍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실제로 특별한 경험을 하기에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큰길의 본질은 이동을 위한 공간이다. 차량과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가야 하는 곳이기에 머무르며 즐길 수 있는 요소는 상대적으로 적다. 유명 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있어 쇼핑하기에는 좋을 수 있지만 현지의 독특한 문화를 느끼거나 색다른 경험을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대형 프랜차이즈가 많아 어느 도시에 가든 비슷한 풍경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거리에서는 지역만의 특색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반면, 큰길의 안쪽에 위치한 골목길은 도시의 진짜 매력을 담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작은 카페, 개성 있는 가게,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 숨은 맛집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그 도시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사람들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리의 작은 뒷골목에서는 지역 예술가들의 아틀리에를 만날 수 있고 도쿄의 골목길에서는 전통적인 이자카야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릴 수 있다. 뉴욕의 브루클린 뒷골목에서는 개성 있는 빈티지 숍과 갤러리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서울의 청계천에 인접한 을지로 공구상가 골목은 이러한 골목길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오래된 철공소, 인쇄소, 공업사, 그리고 노포 식당들이 밀집한 이곳은 최근 들어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명소가 되었다. 낮에는 여전히 도시 내 공장이 돌아가지만, 저녁이 되면 실력을 자랑하는 노포와 개성 있는 점포들이 활기를 띠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래된 산업 지역처럼 보이지만,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이 깃든 가게들과 그곳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대형 브랜드 대신 개성이 뚜렷한 공간들이 자리하며,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사랑받는 장소가 되고 있다.
또한 골목길은 속도가 느리다. 큰길에서는 빠르게 걷거나 차가 쉴 새 없이 지나가지만 골목에서는 천천히 거닐며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벽화나 작은 정원, 오래된 건축물과 같은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며 예기치 않은 발견이 가능해진다. 이런 곳에서는 여행자가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그 도시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골목길에서는 지역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기회도 많아진다. 그 지역에 오래 거주한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세월이 깃든 장소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도시를 여행할 때 화려한 큰길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좋지만 그 도시를 진짜로 경험하고 싶다면 반드시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넘어 도시가 품고 있는 진짜 이야기는 작은 골목 속에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의 경우에도 도심 활성화를 위해서는 단순히 넓고 화려한 도로를 정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큰길 안에 숨겨진 골목의 보존과 관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경주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적지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가게와 오래된 골목길 또한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골목길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관광지 조성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과 경제적 활력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주의 골목들 중에는 노후주택을 개조한 카페나 식당,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이 찾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여전히 빈집이 늘어가고 있고 일부는 길 안 집들을 헐고 주차장을 만들기도 한다. 이제는 골목 중 보존과 활성화가 필요한 곳을 선정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