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일 자로 편집 완료된 경주고등학교 교지 ‘수봉’이 최근 학교와 일부 동문들에게 전달됐다. 이 교지를 읽다 특별히 눈에 띄는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정우인 기자 이름으로 쓴 한주식 회장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무려 7페이지에 걸쳐 소개된 것이다. 내용은 지난해 5월 한주식 회장이 모교 후배들을 위해 특강한 것에 감동한 정우인 학생이 마침 교지 편집 기자를 맡으면서 다소 엉뚱하게 한주식 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쓴 기사였다. 눈길을 끈 것은 모두 10가지로 구성된 질문이었다. 비록 고교생이지만 기자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깊이 있는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구성되었고 미래를 열어갈 학생으로서 당당한 기상과 배움의 자세가 돋보이는 질문들이었다. 이에 대한 한주식 회장의 답변도 매우 정성스러웠다. 지금까지 국내 유수의 방송사 및 언론사들과 밥 먹듯 인터뷰해온 한주식 회장이지만 이처럼 장문의 답변을 낸 것이 드물 정도였다. 한주식 회장은 지난해 경주고 강연 때도 무척 공을 들였다. 단순히 금의환향 식의 얼굴 내세우기가 되지 않고 후배들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공부가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의지를 담아 세심하게 정리했던 한주식 회장이었다. 당시 한주식 회장은 공부를 대하고 대학을 지망하는 자세도 “남들이 안 하는 공부를 하고 인기 있는 학과보다 자신이 정말 흥미를 가지고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전공을 살려라”고 조언하며 후배들의 공감을 얻었다. 강연이 끝난 후 어린 후배들에게 둘러싸인 한 회장은 마치 손자들에 둘러싸인 할아버지처럼 행복한 웃음을 얼굴 가득 띠었다. 정우인 학생은 바로 한 회장의 이런 모습을 가슴에 담았다가 교지를 내면서 다시 한번 그 감흥을 느끼고 싶었음을 인터뷰 서두에 섰다. 생각하기 따라 당돌함이 느껴지는 인터뷰일 수 있었다. 스스로 밝혔듯 경주고와 신라중 모두 60년이나 후배가 되는, 까마득한 후배이자 학생이 우리나라 물류왕이라 일컬어지는 대선배에게 인터뷰를 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방송국이나 언론사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인터뷰 요청을 고등학생이 했다는 그 패기만 해도 가상하기 이를 데 없다. 학교 선생님들도 이 제안을 받아들여 망설이지 않고 한주식 회장에게 알렸으니 이 역시 당연한 듯하지만 통쾌하고 멋진 일이다. 한주식 회장은 이 인터뷰를 대하면서 이전의 어떤 인터뷰 요청보다 뜻깊고 인상적이었다고 술회했다. 모교에서 만드는 교지는 어떤 상업적인 목적도 없고 더구나 순수하고 창의적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열정을 다해 만드는 책인 만큼 자신이 이렇게 비중 있게 소개되는 자체로 어떤 언론매체에 실리는 것보다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정우인 학생과 한주식 회장 간의 인터뷰가 눈길을 끈 중요한 이유가 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사회가 혼란한 이면에는 참된 스승이나 참된 어른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배우려는 사람이 없으니 스승이 없다는 말과도 통한다. 대부분 학교의 공부가 상급학교로 가기 위한 수단만으로 전락했고 심지어 대학이나 대학원 역시 취업의 수단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요즘의 평가다. 그런 시류에서 대선배에게 묻는 후학과 까마득한 후배에게 답하는 어른의 모습을 본 것이다. 정우인 학생이 한주식 회장에게 물은 마지막 질문도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자신과 같은 후배 세대들이 이끌어가야 할 세상에 대한 방향이었다. 이에 대해 물류사업가인 한주식 회장은 뜻밖에도 AI의 도전을 언급했다. AI가 많은 분야에서 일자리나 사람 자체를 위협하겠지만 반대로 이를 해결할 사람의 필요성을 높여 독보적인 위치로 만들어 줄 것이라 조언한 것이다. 인터뷰를 요청한 정우인 학생에게 한주식 회장이 따로 전한 당부가 있었다. 그 속에 60년을 건너뛴 선후배 사이에 끈끈한 정과 냉철한 시대 의식의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회에 나오기 전인 학생 시절부터 한가지씩 목표를 세우고 완성하다 보면 다음 것은 더 쉽고 빠르게 성취할 수 있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한 뚝심과 끈기로 사회 변화라는 걸림돌을 자신만의 디딤돌로 만들어 보라!” 비단 이것인 정우인 학생에게만 한정된 당부가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는 어느 시대보다 기술과 사회의 변화가 빠르다. 이 격변은 분명히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무수한 기회들이 존재한다. 누가 먼저 디딤돌 삼을 것이냐를 새삼 물을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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