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 이걸 넘거나 무시하다 보면 상호 간의 거리가 깨져 방해나 충돌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이런 위험 요소를 방지하기 위해 구축된 문화적 안전선이 곧 매너(manner)다.    매일 우리는 의식을 하든 아니든 간에 다양한 매너와 예절을 지키며 살아간다. 가령 처음 만난 상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할지 아니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할지를 현장에서 바로 결정하고 즉각 실행해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매너는 필수적이다. 영화 〈킹스맨〉에서 나온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는 대사가 그 중요성을 대변한다. 매너는 그래서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예절들이 사실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착되었다. 손 인사를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 무리 속에서 반가운 사람을 우연히 발견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흔들게 된다.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를 바라는 마음에 과장된 손짓은 자연발생적이다. 재밌는 것은, 옛날 로마 군인들도 이랬다고 한다. 차이점은 목적인데, 반가워서라기보단 서로의 손에 무기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란다. 반가운 감정과 두려운 그것이 만나서 예의 바른 ‘손 인사’로 구체화가 된 케이스다.   악수도 같은 맥락이다. 손은 만지려면 동시에 만져질 수밖에 없다. 무기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손과 손을 맞잡고 확인하다 발전한 예절이다. 서양에서 악수가 인사의 기능을 갖춘 것은 겨우 19세기 무렵이다. 수많은 싸움이나 협상이 중재되고 극적으로 타협될 때 어김없이 상대의 손을 흔들었다. ‘누구와 손을 잡는다’는 표현도 상호 우호적인 관계(사실은 무기)를 확인하는 악수의 다른 표현이다. 어쩌면 겁쟁이들(?)끼리 손을 잡던 버릇이 오늘날 좋은 매너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손을 만져 서로가 친구임이 확인되었으니 이제 뭔가 먹을 차례다. 오늘날 유럽 식탁 하면 포크와 나이프가 놓여있기 마련이지만 예전엔 아니었다. 이 역시 안전성 문제였다. 식탁에 초대받은 손님이 요구하면 옆에서 시중들던 하인이 나이프를 건네줬다. 다 썼으면 곧바로 하인한테 돌려줘야 했고. 하인도 건네받은 나이프 끝을 조심스레 다루었다니 어디 무서워서 밥도 제대로 먹겠나 싶다. 이런 모습이 카롤링거 왕조 때 실제 지켜졌던 식사 예절이라고 한다. 식사 자리에 술이 빠질 순 없다. 그 당시 커다란 술통을 양손으로 잡는 건 아주 위험한 행동이란다. 심장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자세라나? 그래서 만들어진 최적의 매너가 뭐냐고? 원샷(one shot) 문화다. 술로 가득 찬 잔을 한 번에 쭈욱 들이켜야만 했다. 술잔 바닥이 하늘을 향하는 ‘바텀스 업(bottoms up)’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이게 간단치가 않은 게 5세기경 게르만족의 왕 오도아케르(Odoaker)가 술자리에서 암살당했고, 영국의 왕 에드워드(Edward the Martyr)도 술통을 들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지금도 옥스퍼드 대학 주변 술집에서는 상대가 잔을 비울 때까지 두 손의 엄지를 식탁에 붙이고 기다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고 하니 흥미롭다. 매너는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 발전 중이다. 구체적 예가 일본의 대중교통에서 볼 수 있는 ‘백팩 매너’다. 혼잡하기로 유명한 일본 전철 안에서는 백팩(등에 메는 커다란 가방)을 앞으로 매는 게 예의다. 백(back)이 등을 의미하지만 전철 안에서만큼은 ‘프런트(front) 팩’인 이유는 커다란 가방이 남에게 피해가 되기 때문이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 얼굴 높이에 가방이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라. 최근에는 이마저도 예의가 아니라는 정서가 모여졌다. 앞으로 맨 가방 위로 스마트폰을 보다가 팔꿈치로 옆 사람을 찌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백팩을 ‘손으로 들고 있기’다. 예의가 등에서 가슴을 거쳐 손으로 이동하는 게 재밌다. 종전(終戰)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 중인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군복을 입고 있어 논란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전쟁 중인 국가 지도자로서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했을 테다. 하지만 미국은 공식 회담장에 정장이 아닌 복장으로 나타난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는 입장이다. 상황과 처지에 맞는 상호 존중과 배려가 매너의 본질이라면 두 정상은 차이를 어떻게 풀고 ‘손을 마주 잡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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