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처리가 불발됐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고준위특별법)’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에너지 3법’(전력망확충법·고준위특별법·해상풍력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전력 등 에너지 수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중 고준위특별법은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고준위 방폐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방폐장이 없는 현 상황이 장기적으로 국내 원전의 안정적 운영이나 수출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에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번 본회의에서 통과된 ‘고준위특별법’은 김석기·이인선·김성원·정동만·김성환 의원이 대표 발의한 5개 법안을 병합 심사한 것이다. 특별법안에 따르면 2050년까지 중간저장시설을, 2060년까지 영구 폐기장을 짓기로 규정했다. 이 기간 원전 내 폐연료봉을 보관하는 수조가 포화하면 부지 내 저장시설에 임시저장하고, 임시저장시설을 설치할 경우 해당 지역 주민에 대해 직접적인 현금성 지원을 하는 조항도 담겼다. 21대 국회에서 쟁점이었던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의 용량은 ‘원전 비중 확대’에 반대하는 입장인 야당 안이 관철돼 ‘설계수명 중 발생 예측량’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원전 확대 입장인 여당은 ‘원자로 운영 허가 기간의 발생 예측량’으로 하자고 맞선 바 있다. 경주에 고준위 방폐장 들어올 수 없도록 명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고준위특별법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 있는 경주시에 고준위 방폐장이 들어올 수 없도록 규정했다.   특별법 제21조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3조 제1항에 따른 유치지역은 기본조사 후보 부지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한 것. 법안에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를 설치해 고준위 방폐장 조성을 위한 기본조사 후보 부지를 도출하고, 관할 시·군·구의 신청을 받아 기본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이 같은 기본조사 후보 부지에 중·저준위 방폐장이 있는 지역은 제외한다고 명시함으로써 경주시에 고준위 방폐장이 들어올 수 없도록 명확하게 규정했다. 부지 내 저장시설 설치 및 지원 규정 마련 특별법에는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하 부지 내 저장시설)의 설치·운영 등에 관한 사항도 규정했다. 특히 부지 내 저장시설의 저장용량은 해당 원자력발전소 내 건설 또는 운영 중인 발전용 원자로의 설계수명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양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이는 원전 비중 확대를 반대하는 야당의 입장이 반영됐다. 이 조항에 대해서는 10년 계속 운전을 추진 중인 월성 2·3·4호기에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되면서 벌써부터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부지 내 저장시설 설치 시 주변지역 지원사업으로 현금성 지원 조항도 포함됐다. 부지 내 저장시설 주변지역 지원사업은 △주민직접지원사업 △주민복지사업 △소득증대사업 △육영사업 △주변지역 발전, 환경 개선, 안전관리, 주민의 건강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필요한 사업 등이다. 이중 주민직접사업은 주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등 직접 지원하는 사업으로 명시해, 현금성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월성원전 2·3·4호기 계속운전 추진 ‘차질 빚나’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의 용량은 원전 설계 수명중 발생 예측량으로 한정하기로 한 조항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원전이 처음 가동될 때 허가된 수명만큼 저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특별법의 취지여서, 월성 2·3·4호기의 계속운전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월성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인 캐니스터, 맥스터는 30년 설계수명에 맞춰 이미 설치돼 운영 중이어서, 특별법에 따르면 저장시설의 증축이 막히게 된다. 특히 중수로 방식의 월성 2·3·4호기는 경수로인 신월성 1·2호기에 비해 방사성폐기물이 더 많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추가 저장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계속운전이 사실상 불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월성 2호기는 2026년 11월, 월성 3호기 2027년 12월, 월성 4호기는 2029년 2월 각각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이와 관련 경북도는 월성 2·3·4호기의 계속운전을 위해 고준위특별법의 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라고 지난 4일 밝혔다. 부지 내 저장시설의 용량을 최초 허가된 설계수명에 맞춘 것을 ‘고준위 방폐장 관리위원회’에서 여건 변화가 있으면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 개정안을 관계 부처 또는 국회에 지속 개정 건의한다는 것.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고준위특별법 제정은 500만 원전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면서도 “원전의 계속운전이 필요한 만큼 관련 제도 개선을 통해 원전의 계속운전이 적기 추진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 영구 폐기장될까 우려도 제기 고준위특별법은 2050년까지 중간저장시설, 2060년까지 영구 폐기장을 짓기로 규정하고 있어 환경단체 등의 반발도 나오고 있다. 현재 원전 내 임시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최소 2050년까지 보관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기 때문이다. 또 2005년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 시 ‘2016년까지 고준위 방폐물을 경주 밖으로 반출하겠다’는 당시 정부의 약속을 폐기하는 의미도 담겨 있어 논란의 소지가 되고 있다. 경주의 환경단체 관계자는 “월성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사실상 영구적인 폐기장이 될 수밖에 없고, 원전 인근 주민들은 그에 따른 위험을 떠안게 된다”며 “무리하게 고준위특별법을 추진하기 보다 고준위방폐물에 대한 정책을 재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랜 진통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고준위특별법이 시행도 되기 전에 여러 현안에 부딪히면서 향후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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