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아무거나 사!”
‘우리 남편, 지금 배가 많이 고프구나...’
모처럼 장 보러 시장에 함께 가면 와이프는 먼저 호떡이나 떡볶이 가게로 내 손을 끈다. 예전에는 그저 와이프가 주전부리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배가 고프면 와이프 뒤에서 계속 구시렁대는 남편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상대의 마음속을 헤아리는 것은 대화나 원활한 소통의 대전제다. 깊게 박힌 십(+)자 나사못을 일(-)자 드라이버로 아무리 돌려봐라, 열리나! 타방을 움직이거나 감동시키려면 일방 스스로 타방이 되는 수밖에 없다.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타방과 공유할 수 있는 언어 감정과 시점(視點)은 필수다.
웬만한 애들 정도 수준으로 똑똑하다는 코끼리는 어떻게 소통할까? 연구에 따르면 코끼리 세상에는 서로를 부르는 고유한 이름이 있다고 한다. 국제 코끼리 보호 단체(Save The Elephant)와 캘리포니아주립대(CSU)가 코끼리의 발성 자료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나온 결과라 믿을 만하다. 무리 속에서 특정 코끼리를 콕 집어 이름을 부른다는 건 실로 놀라운 발견이다. 인간이 예측하는 수준보다 코끼리의 소통 능력은 더욱 정교하며, 그런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보다 진보된 인지 능력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연구에 참여한 백여 마리 코끼리가 서로를 부르는 이름이 자그마치 470여개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누구 아빠로, 어디 세대주로, 누구 고모부로 불리듯이 코끼리 세상도 그런 모양이다. 대화를 시작하는 방식을 알았으니 이제 그들의 울음소리 안에 내재된 다양한 감정이나 상징들, 그렇게 직조된 사회관계망도 언젠가는 파악할 수 있을 테다. 지금 당장은 꼼짝도 않는 나사못이지만 그들의 발성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나간다면 언젠가 우리가 코끼리와 대화하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지능이 높은 동물로 코끼리가 있다면 바다에는 고래를 꼽을 수 있다. 지난 10년간 과학자들이 연구를 해봤더니 고래들은 그들만의 의사소통 단위(인간으로 치면 ‘가나다’나 알파벳)가 있더란다. 이 또한 여태 없었던 새로운 발견이다.
혹시 유튜브 같은 데서 향유고래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들어보면 마치 컴퓨터 마우스 누를 때 나는 소리와 동일한 딸깍(click)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와 국제 향유고래 언어 연구 단체(CETI)가 60마리의 향유고래들의 대화를 엿들어봤더니, 위에서 언급한 클릭 체계의 박자와 리듬을 바꾸는 방식으로 대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정말 흥미로운 건, 일방의 말이 끝나면 상대방이 받아서 이야기할 수 있게 클릭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일방적 훈시나 고백과 달리 대화의 생명은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모드가 아니던가!. 내 의사를 충분히 개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상대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막 말을 배우는 아기들을 보라. 처음에는 생떼만 쓰다가 점차 대화의 방식, 즉 주거니 받거니 하는 소통의 리듬감을 배우게 된다. 내 급한 욕심도 있지만 그걸 관철시키기 위해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거다. 검푸른 바닷속에서 아파트만 한 고래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니 상상만으로도 경이롭다.
이제 가까운 데를 살펴볼까. 프랑스 파리에 있는 낭테르대학에서는 반려묘의 기분을 과연 인간이 얼마나 잘 캐치하는지 연구했다. 울음소리만 들어도 알고(72%) 행동만 봐도 잘 느끼더란다(87%). 이 둘을 동시에 보고 들으면 반려 관계가 과연 뭔지 알 수 있을 정도(91%)로 잘 통했다는 건 당연해 보인다.
동물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는데 이름 있겠다 말과 글 있겠다 효과적인 대화법도 다 아는 인간은 어쩌면 이렇게 대화와 타협에 미숙할까? 오늘날 우리 정치권 이야기다. 같은 언어를 구사하면서 이렇게 단절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진영 논리와 정파적 이익 앞에서 서로가 적이 될 수밖엔 없는 걸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화하려는 시도 없이는 우린 그저 서로에게 박혀있는 나사못이라는 움직이지 않는 사실을, 향유고래한테서라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