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신라의 옛 도읍으로 남쪽에는 남천(南川), 서쪽에는 서천(西川), 북쪽에는 북천(北川)이 흐르고, 물의 형세가 고을을 빙 두르면서 아래로 흘러가고 있어 삼면이 모두 물이다. 남천은 외동읍 신계마을에서 발원해 형산강으로 흐르는 원동천(院洞川)으로 언제부터 남천으로 불렸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삼국유사』에 사천(沙川)·연천(年川), 『삼국사기』에 문천(蚊川) 등으로 기록되며, 사등이천(史等伊川) 등으로도 불렸다. 사등이천은 토함산에서 발원하여 서천으로 흘러 들어가며 황천(荒川)이라고도 한다. 문천(蚊川)은 경주부의 남쪽 5리에 있고, 사등이천의 하류에 속한다.
신라의 기이한 풍경 8가지 가운데 문천의 모래가 너무나 부드러워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만, 모래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문천도사(蚊川倒沙)가 있는데,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1)는 문천류사(汶川流沙), 즉 흐르는 모래로 표현하였고, 돈을 내어 돌을 쌓아 흐르는 모래를 보호하였다며 연계당(蓮桂堂:사마소)에 대해 언급하였다.
특히 남천에는 임금이 머물던 월성을 휘감는 문천의 물줄기가 반짝이는 모래와 더불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때로는 성을 지키는 방어의 역할도 하였다. 넓고 맑아서 일정교·월정교 등 다리가 놓이고, 물길을 따라 버들이 심어졌다. 금오산 북쪽의 문천 가에 상서장이 우뚝하고, 교촌의 사마소와 필재정[숙연당] 정자는 지난 역사를 기억한다. 필자에게도 남천은 어릴 적 멱 감는 최고의 휴양지였다.
때로는 지역이 가장 낮은 곳에 수해가 발생해 백성의 삶과 선왕의 묘역과 문물이 매우 위태롭기도 하였는데, 내남 화곡의 화계(花溪) 류의건(柳宜健,1687~1760)은 문천 가의 오래된 탑이 일찍이 벼락을 맞았고, 또 수해까지 입은 안타까운 상황을 시로 표현하였다. 문천 가 오래된 탑이 수해로 무너지다(汶川邊古塔 爲水渰毁) - 류의건 문천 시내 남쪽 언덕의 높은 탑, 일찍이 제천불의 노력으로 세워졌네. 땅이 흥망을 겪으며 몇 번이나 변했고, 사물의 완성과 무너짐의 관계 어찌 운세를 피하리. 우레가 벽돌을 치니 신도 지켜내기 어렵고, 물이 기초를 침식하니 돌도 견디지 못하네. 조물주는 어떤 마음에 서로 힘들게 하는지, 천년 고적을 큰 물결에 맡기시나. 성현(成俔)은 『용재총화』에서, “경주는 산천이 둘러 있고 땅은 기름지다. 교천(蛟川) 한 굽이가 놀 만하고, 다른 빼어난 경관의 장소가 없다.”라고, ‘교천’을 언급한다.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1) 역시 최치원의 독서당 유허비를 설명하며 “상서장은 금오산 북쪽 교천(蛟川) 가에 있고, 동도의 영험한 땅의 기운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과연 우연한 일이 아니다.”라고 역시 교천을 말한다. 하지만 『여지승람』에는 “상서장은 경주 금오산 북쪽 문천(蚊川) 가에 있다(上書庄在慶州金鰲山北蚊川上).”라고 기록한다.
『여재촬요(輿載撮要)』의 경주지도를 보면, 교천은 토함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서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박물관 부근에서 하나는 월성을 끼고 서천에 합수되어 현곡으로 흐르고, 하나는 상서장을 끼고 선도산 방면으로 흐르는 두 물줄기로 나타내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삼국사』에 “동경에 교천이 있다(東京有蛟川).”라고 언급하였으나, 『삼국사기』 원문에 “蛟川” 표기가 없는 것을 미뤄보면, 아마도 오류인 듯하다. 고서를 보다 보면, 종종 지명의 오류와 작성 시기에 따라 잘못 옮겨 적는 경우 등이 발생한다. 지금의 남천은 문천으로 불리고, 한자로는 蚊, 汶, 文 등으로 표기되며, 교천(蛟川)은 문천(蚊川)의 오류로 봐도 무방하다.
포근한 봄날 신라의 박혁거세 설화를 품은 오릉에서 동쪽으로 경주의 역사가 서린 남천을 거슬러 오른다. 탑동마을을 지나 향교를 품은 교촌마을과 복원된 월정교가 눈에 들어온다. 사마소 그리고 인접한 월성은 신라와 고려, 조선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박물관을 휘감아 돌아 고청기념관에 이르면 옥룡암과 보리사를 품은 남산의 형세가 비로소 보인다. 사천왕사와 문두루비법(文豆婁祕法)의 망덕사 얘기에 집중하다보면, 신라의 여러 왕릉을 지나 동방 폐역에 이른다. 몇 굽이를 더 거슬러 오르면 토함산 자락의 불국사에 이르고, 시동·시래교 아래의 남천을 지나 더 오르다보면 비로소 남천의 발원지 신계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물길을 따라 문명이 발생하였듯 경주의 물길을 따라 역사와 문화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행은 좋은 추억을 선사할 것이며, 게다가 경주의 원사정재(院祠亭齋)와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지면 경주여행의 풍성한 즐거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