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발전에 한 부분은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희생해야 했다. 대한민국 대표 수출품이었던 가발, 옷, 신발 등을 생산하는 공장 직원들은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곳에서 15시간 이상 근무했다. 여공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다락방 같은 곳에서 미싱 앞에 앉아 15시간을 근무하면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휴식은커녕 잠잘 시간도 부족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서 다치기라도 하면 그대로 쫓겨난다.   기술력이 없던 대한민국은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성을 높여 값싼 가격에 수출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때 희생된 수많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삶은 전태일이라는 청년에 의해서 표면에 드러났다. 다들 먹고 사느라 힘든, 나라마저도 힘이 없던 시절, 아무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전태일은 분신하며, 대한민국 노동계를 일깨웠다. 대한민국 노동운동은 대한민국의 발전과 함께 성장했다고 아줌마는 생각한다. 현대차는 외국에서 부품만 사다가 단순히 조립만 하던 회사에서 스스로 전기차를 개발하고 외국계 로봇회사를 인수하여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2차 전지 관련 회사들은 고품질 배터리 시장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전자제품을 팔던 삼성은 미래 먹거리로 1980년대 반도체를 선택했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던 그 시장에서 일본과 미국을 제치고 살아남았다. 노동계는 어떤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라는 두 거대 노총이 대한민국에 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정말 노동자를 위한 단체인지, 같이 죽자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 문제를 알게 된 것은 자동차 회사의 파업 뉴스가 시작이었다. 해마다 연례 행사처럼 뉴스에서 단골 뉴스로 나왔다. 그러다가 그 회사의 노동 환경과 생산성 등이 궁금해서 하나둘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줌마는 놀랐다. 노동 환경은 격세지감을 불러일으켰다.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영세 환경 노동자들이 존재하지만, 그 회사의 경우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일으킨 회사답게 훌륭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런 좋은 시설과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생산성이 58%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놀라운 점은 똑같은 시설의 미국 공장의 생산성은 90퍼센트를 웃돌았다.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한국인들의 융통성과 잔머리였다. 예를 들어 생산 라인 컨베이어밸트가 이동하는 동안 세 명의 노동자가 각자의 부품을 조립하는데, 속도가 느려서 굳이 이렇게 움직이는 게, 한마디로 널널하다. 아무래도 직원들의 안전과 품질 향상을 위한 속도로 진행되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인의 융통성과 잔머리가 등장한다. 세 명이 할 일을 한 명이 하고 두 명은 논다. 그렇게 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노동자끼리 판단해서 그렇게 움직인다(물론 모든 생산 라인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세 명이 천천히 할 일을 한 명이 몰아서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좀 빠듯하다. 실수도 종종 생긴다. 품질적인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다. 쉬는 두 명의 노동자는 핸드폰을 보며 쉰다. 노동현장에서 핸드폰 사용을 금지하려고 하자 노조가 반대했던 이유가 아무래도 이런 부분이 아닐까 아줌마는 의심해본다. 미국 공장에서는 노동현장에서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세 명의 노동자의 한 라인에서 부품을 조립한다. 시간이 너무 남는다. 그래서 심심하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회사에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좀 높여달라고 건의한다. 그렇게 생산성이 향상된다. 노동자도 기업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물론 몇 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기를 바란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대다수가 이런 대기업에 의해 움직인다. 아무래도 회원 수가 더 많으니 그럴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의 노동자보다 중소기업, 영세기업의 노동자 수가 월등히 많다. 단지 그들의 의견을 수렴할 대표가 없을 뿐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노동 단체라면 대기업 노조만을 대표하는 것이 맞을까?   아줌마는 아니라고 본다. 노동 단체가 필요한 이유는 노동자의 불이익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요즘 노동 단체는 노동자의 불이익을 막기보다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채우고, 대기업 노동자들의 밥그릇에 더 집중하는 모습에 아줌마는 불편하다. 전태일이 목숨으로 시작된 노동운동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노동운동도 변해야 하고, 기업이 발전했으면 노동자에게도 이익을 나눠줘야 한다. 아줌마도 백퍼센트 공감한다. 그러나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꾸 더 달라고 떼만 쓰는 형국은 아니라고 본다. 한 대학교 청소 아줌마들의 노동쟁의를 봤다. 안타까운 현실에 수업에 오히려 방해된다고 고소하는 일부 학생들의 모습에서 아줌마는 또 분노했지만, 다행히 같은 대학 동문들이 나서주는 모습에서 감사했다.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불합리한 환경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많다. 그런 환경을 찾아 그들을 대신해 거대 노조의 경험과 힘으로 기업과 노동자를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합의를 유도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여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노동운동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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