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9일 오후. 한 젊은이가 경북 내성천 부근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해병대 채수근 일병이었다. 그는 다음 날 새벽 시신으로 발견됐다.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그 뒤,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보직 해임됐다. 그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난 1월 9일 군사법원에서 박정훈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일단락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박정훈 대령 사건과 계엄상황을 접하면서 새벽이면 국내 소식이 궁금해 휴대폰을 켜 뉴스를 검색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따라서, 30년 가까이 군생활을 경험한 나로서는 지난 1년 반 동안 관련 쟁점들을 반추하고 이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을사년 새해 1월 9일. 박정훈 대령 1심 무죄가 나오자, 사회 일각에서 프랑스의 ‘드레퓌스’가 소환되고 있다. 프랑스 군대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 1859~1935)가 독일에 기밀을 누설한 간첩 혐의로 억울하게 기소된다. 이후 심지어 진범이 밝혀졌지만 프랑스 군부는 ‘유대인이라는 게 증거다’라는 수준의 주장을 이어갔다. 결국 드레퓌스는 유죄가 확정되어 외딴섬에 유배됐다. 이후 ‘진범’이 밝혀진 뒤에도 그가 석방되지 않자 에밀 졸라를 비롯한 프랑스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특히 에밀은 ‘나는 고발한다’라는 기사를 통해 군부의 부도덕성을 폭로하며 ‘진실’을 알렸고, 그 후 프랑스 사회는 내전 수준의 극심한 정치·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1906년 마침내 재심이 이뤄져 드레퓌스의 무고함이 밝혀지고 사건이 종결됐다. 이 사건을 통해서 군부가 개혁되고 왕정복고를 꿈꾸던 왕당파 세력이 무너지며 공화정이 안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즈음 계엄상황과 맞물려 박정훈 대령 사례가 군은 물론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이 컸음을 실감한다. 우선, 22대 국회 국방위 구성을 보면, 전직 법무장관, 야당 최고위원 등 쟁쟁한 인사들이 포진했다. 이들은 국정감사에서 계엄에 대한 사전경고, 박정훈 대령 관련 주요 쟁점들을 제기하면서 주도권을 가져갔다. 이는 통상 국회 국방위 위원들은 다선의원 위주로 국민적 관심에서 비켜나 있었고 국회 차원의 의제설정(Agenda Setting) 사례가 많지 않았던 것과 사뭇 다르다.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이 이슈화되면서 불의·불법한 명령을 수명함에 있어 하급 제대에서는 ‘무조건적 복종’을 선택하는 경우가 사라졌다. 소위 ‘항명’과 ‘복종’ 사이의 딜레마에 처할 때 법과 규정을 우선 고려했다. 검찰조사 과정에서 “위법을 따질 여력이 안 됐다”는 일부 사령관들의 증언과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상부 지시에 수방사 제1경비단장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며 재고를 요청했고, 소대장 A모 중사가 “국회 담장을 못 넘겠다”고 한 것은 박정훈 대령 사건의 나비효과가 아닐까. 계엄 당시 박정훈 대령 변호를 맡았던 정모 변호사는 국회 본관 앞으로 달려가 “박정훈 대령 못 봤냐. 항명해도 유죄가 되지 않도록 내가 변호하겠다”고 외쳤다고 한다. 공수처의 대통령 체포 과정에서 저항하지 않았던 경호처 대다수에게도 군사법원 판시 결과가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한국방송(KBS)의 12.3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 코너에 계엄군 차량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국내외 언론은 물론 SNS에 화재가 되었던 김동현 군. 그는 인터뷰에서 “절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공포였다”며 “우리가 가진 상식이나 정의·가치는 때때로 현실에서 목소리를 낼 때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사회복지 정책분야에 일하기를 원한다는 이재정(중앙대 대학원생) 씨는 “사회정책이 그 사회 전반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만약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사회안전망, 사회복지가 위기에 빠질 것이므로 계엄상태에 놓였었다면, 그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계엄선포 직후 주변 사람들은 대한민국과 같은 선진 국가에서 비상계엄(Martial Law)을 선포한 사실에 놀라고 있다. 하지만 계엄선포 직후 국회의 계엄 해제, 평화로운 시위 소식 등 우리 사회의 회복력에 감탄하고 있다. 집 주변에 봄을 알리는 수선화가 피고 새끼 양들이 들판을 뛰어다닌다. 하지만 휴대폰을 통해 전해오는 국내 소식은 탄핵을 둘러싼 사회갈등,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실감 난다. 드레퓌스가 20세기의 프랑스 공화정을 공고히 한 것처럼 새봄에는 우리 사회가 민주 공화정을 공고히 하는 가운데 안정과 번영을 되찾는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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