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가) 항상 동궁에 거처한다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사시(四時)에서 동쪽은 봄을 의미하니, 만물의 생장은 동쪽에 있다. 서쪽은 가을을 의미하니, 만물의 성취는 서쪽에 있다. 이에 임금은 서궁에 있고 태자는 항상 동궁에 머무르는 것이다.’-『춘추좌전정의』 권3 은공 3년 당나라 학자 공영달(孔穎達)의 소(疏)- 경주 월지 동편에서 태자가 머물던 ‘진짜 동궁’이 발견됐다. 동궁은 그동안 신라 태자의 공간으로 알려져 왔던 월지 서편 대형 건물터가 아니라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월지 서편의 동궁은 왕이 머물던 공간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6일 서울 코엑스에서 ‘국가유산청이 새로 쓰는 신라사’ 언론공개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최근 조사를 통해 월지 동편이 ‘진짜 동궁’으로 밝혀졌다. 동편과 서편의 건물지는 왕과 태자의 공간에 위계를 두고, 계획적인 경관 조성에 염두를 두고 대지를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월지 서편의 기존 동궁 건물터는 주변보다 높게 조성된 대지 위에 위치하고, 건물 자체의 위계도 높아 동궁으로 확정 짓기 어려웠다”면서 “기존 동궁터는 왕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 두 공간이 독립적으로 운영됐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동·서편 건물 위계 차이 확인
국가유산청은 이날 언론공개회에서 월지 동편 건물터가 진짜 동궁이라는 근거를 공개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동편 건물터는 정면 25m, 측면 21.9m 규모다.
반면 월지 서편 건물지는 정면 29.1m, 측면 19.4m로 동편보다 규모가 크다.
또 건물 칸수도 서편은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동편 정면 5칸, 측면 4칸보다 규모가 크다
. 특히 서편 건물은 해발 52.6m 높이로, 50.3m인 동편 건물보다 해발고도가 2.3m 높다.
이는 태자가 왕을 우러러보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같이 건물의 위계에 차이를 뒀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서편 건물지는 왕이 머물던 공간, 동편은 태자의 공간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
국가유산청은 “양쪽 건물의 위계 차이가 확인돼 월지 동편 건물지를 동궁으로 보고, 서편 건물지는 왕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진짜 동궁의 모습은?
이번에 공개된 진짜 동궁은 월지와 별도로 조경시설인 원지(정원 안의 못)를 건물군 내부에 둬 독립적 공간으로 만든 왕경 최초사례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발굴된 동편 건물터는 정면 5칸(길이 25m), 측면 4칸(18.1m)의 직사각형 평면에 18개의 기둥 자리가 확인됐다. 이후 일정한 시점에 측면에 공간을 3.8m 추가로 넓힌 것으로 확인됐다. 복도식 건물로 거대한 회랑과 익랑에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넓은 마당이 있다.
내부에는 따로 원지를 파서 조경한 흔적들도 나왔다. 이곳 원지는 너비 43.56m, 길이 17.2m 규모로, 내부에 2개의 인공섬도 있다. 그리고 기존 동궁과 월지와 연결되지 않고 따로 남북 방향 배수로를 통해 발천으로 흐르는 독립된 배수 체계를 갖춘 것으로 조사됐다. 또 물이 빠져나가는 출수구는 원지 서편에서 확인됐으며, 입수구는 동편으로 추정하고 있다.
월성 궁궐 존재설 입지 약해지나?
이번에 월지 동편 건물터가 동궁이었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월성의 왕궁 존재설의 입지가 약해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월성의 경우 지난 2014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궁궐로 추정할 수 있는 유적들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월성은 4~7세기 간이 왕궁으로 유지해오다 8세기 통일신라시대 이후 월지와 대형 건물군이 본격 조성되면서 왕궁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됐을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월성에 대한 발굴조사는 초기 성벽과 해자, 주변 건물터 등에 대해서만 이뤄졌고, 본격적인 내부 조사는 시작단계에 불과해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원 관계자는 “현재까지 월성 중심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신라 왕궁의 실체를 알 수는 없다”면서 “월성이 왕궁이었다는 삼국사기 등의 기록이 있는 만큼 궁궐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신라 의례 밝힐 유적도 발견
이날 국가유산청은 2014년부터 시작한 신라 왕경 발굴조사 10년의 성과를 종합해 공개했다. 그중 신라 월성 일대에서 개를 의례 제물로 바친 흔적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월성 서남쪽 일대 취락 끝자락에서 개로 추정되는 동물 뼈가 발견된 데 이어 희생된 개가 추가로 발견한 것.
두 마리 개는 대칭을 이루듯 왼쪽과 오른쪽에서 각각 발견됐다. 이번에 나온 개의 크기는 약 46㎝로, 지난해 발견된 개(60㎝)보다 작다. 위에서 아래로 힘이 가해져 목이 꺾이고 목뼈가 이탈한 개는 다리도 앞으로 가지런히 모여 의례를 위해 희생된 뒤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 발견된 개 주변에서는 날카로운 청상아리 이빨 12개도 함께 확인됐다. 장신구 또는 활촉의 일부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당시로서는 고급 물건이었던 옻칠 상자 안에 수정 목걸이가 들어 있었는데, 수정을 꿴 실도 함께 발견돼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발굴된 유적은 신라의 모체가 된 사로국 시기 신라의 의례 모습을 밝히는 주요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