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발레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여성 무용수가 서른 두 번을 빙글빙글 도는 장면이 있어야 한다. 이 묘기는 발레 테크닉 중 가히 최고라 말할 수 있는 푸에테(fouetté)다.
푸에테는 한쪽 발로 신체를 지탱하고 그것을 축으로 삼아 팽이처럼 도는 연기를 말하는데, 이걸 넘어지지 않은 채 서른 두 번을 연결하면 기막힌 묘기가 된다. 32회전을 하는 동안 모두들 가슴을 졸이다가 마지막 회전이 끝나면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무용수가 푸에테를 연기하는 도중에는 박수를 삼가는 게 좋다. 돌 때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푸에테는 고전발레의 중요 요소인 클래식 튀튀와 잘 어울리는 테크닉이다. 종 모양의 긴 치마인 로맨틱 튀튀는 아무래도 회전에 적합한 의상은 아니다. 19세기 후반 들어 치마 길이가 초미니 스커트 수준으로 짧아지면서 클래식 튀튀는 자연스레 무용수의 여성미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었다. 사실 클래식 튀튀의 치마 모양새는 32회전 푸에테의 궤적과 닮아있다. 즉 돌지 않아도 빠른 속도로 돌 때의 치마 모양이라는 거다.
32회전 푸에테는 ‘백조의 호수’에서 흑조 오딜이 추는 장면이 매우 유명하다. ‘돈키호테’에서 나오는 키트리의 32회전도 이에 필적한다.
그럼 누가 이런 고난도 테크닉을 처음 선보였을까? 이탈리아의 무용수 레냐니(Pierina Legnani, 1863-1930)라고 한다.
그녀는 1894년 ‘신데렐라’에서 32회전 푸에테를 처음 선보였고, 다음 해 백조의 호수에서도 왕자를 유혹하기 위해 서른 두 번을 돌았다. ‘신데렐라’에서 레냐니의 신기에 가까운 푸에테 연기를 본 프티파가 백조의 호수 3막에 그녀를 위해 안무를 삽입한 것이다.
레냐니는 1인2역으로 오데트(백조)와 오딜(흑조)을 소화한 최초의 무용수이기도 하다. 영화 ‘블랙스완(Black Swan, 2010년)’은 이를 모티브로 했다. 선악이 공존하는 한 인간의 정신분열을 잘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 1981-)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2011년)을 거머쥐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푸에테는 반드시 32회전이어야 할까? 32회전이 나오도록 안무가 되어 있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회전수가 모자라거나 넘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파리국립오페라발레의 수석무용수 박세은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바퀴 수를 세지 않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연 중에 푸에테가 나오면 세어 보리라 마음먹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한다. 푸에테 연기의 황홀함에 빠져 숫자를 셀 염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