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계의 반항아 카마르고(Marie Camargo, 1710-1770)가 긴 치마를 발목 위로 싹둑 자르고 무대에 등장한 이후로 여성 무용수들의 치마는 점점 짧아져 갔다. 낭만발레 ‘지젤’에서 보았던 종 모양의 다소 긴 로맨틱 튀튀(romantic tutu)를 지나 프티파 시대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짧아질 수 없을 정도의 초미니 스커트가 무대를 점령했다. 오늘날 발레리나하면 바로 연상되는 그 의상, 클래식 튀튀(classic tutu)다.
클래식 튀튀는 사실 남성 관객들의 눈요깃거리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무용수들의 날씬한 몸매와 눈부신 각선미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레공연의 진수는 노출된 다리 전체를 활용한 무용수들의 현란한 테크닉이다. 클래식 튀튀 덕분에 여성 무용수들은 바지를 입고 연기하는 남성들의 모든 기술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발레리노가 아닌 발레리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발레리나 전성시대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춤꾼 니진스키(Vaslav Nijinsky, 1890-1950)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된다.
클래식 튀튀는 치마가 백조의 깃털처럼 허리선에서 옆으로 뻗어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깃털처럼 부드러워 보이지만 직접 만져보면 뻣뻣하다. 치마 챙이 옆으로 펴져 있으려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가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남성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와 파드되(2인무)를 할 때(예를 들어, 여성 무용수를 높이 들어 올리는 장면에서) 치마 챙에 얼굴에 긁히기도 한다. 잘 생긴 얼굴에 상처가 나지 않으려면 조심해야한다.
다음은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이다. 디베르티스망은 이야기의 줄거리와 관계없이 볼거리로 삽입하는 춤 모음을 말한다. 불어로 심심풀이, 기분전환이란 뜻으로 실제 공연에서 이런 역할을 한다. 차이콥스키와 프티파 콤비의 3부작에는 디베르티스망이 고전파의 형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백조의 호수’ 3막에서는 왕자의 성년식을 축하하기 위해 온 세계 각국의 사절단이 폴란드, 러시아. 스페인, 헝가리 등 다양한 민속춤을 보여준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3막 결혼식에서도 장화 신은 고양이, 빨간 모자와 늑대, 신데렐라와 왕자, 파랑새와 플로린 공주 등 동화 속 캐릭터가 등장한다. 디베르티스망은 ‘호두까기인형’에서 절정을 이룬다. 2막 과자의 나라에서 스페니쉬 초콜렛, 아라비안 커피, 차이니즈 티, 러시안 막대사탕 등이 나와 춤의 향연을 보여준다.
디베르티스망은 발레의 스토리 라인에서 잠시 벗어나기 때문에 공연 내용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도 디베르티스망이 고전발레의 형식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발레는 무언극이라 자칫 지루해지기 쉽기 때문에 이를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 디베르티스망은 고난도 테크닉과 시각적인 즐거움으로 지루함을 덜어준다. 점프나 회전을 많은 주연 무용수에게는 체력 충전을 위한 꿀 같은 휴식이 되기도 한다.(디베르티스망에는 휴식이란 뜻도 있다.) 한편, 디베르티스망 장면에서는 해당 무용단의 떠오르는 꿈나무 무용수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이 자신의 무용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차세대 주연으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