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강우방 원장은 팔순 중반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최근 『성덕대왕신종, 천년의 신비-우보장엄(雨寶莊嚴)의 메타포』라는 제목의 연구문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2023년에는 『예술 혁명일지』라는 책을 출간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역 학자 이상의 열정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도서관에서 강우방 원장의 책은 죄다 빌려와서 허겁지겁 페이지를 넘겼지만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책 속의 내용들을 인용해 본다.
경주를 통해 한국을 배웠다.-논문집 『원융(圓融)과 조화(調和)』 그리고 『법공(法空)과 장엄(莊嚴)』
1990년에 출간된 책이다. 한국고대조각사의 원리Ⅰ이라는 부제가 붙은 논문집이다.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을 한 편도 빠짐없이 실었다. 자서(自序)에는 ‘이 책은 나의 자화상이다. 12년의 경주 생활을 통해 한국을 배웠다’라고 밝혔다. 책의 내용도 신라와 불교미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법공(法空)과 장엄(莊嚴)』은 10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논문집이다. 마찬가지로 한국고대조각사의 원리Ⅱ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원융과 조화』의 연장선에 있는 논문집이다.
원융은 무엇이며 법공과 장엄은 또 무엇일까? 충분한 이해를 위해선 불교적 지식이 어느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융이란 속성을 잃지 않고 하나라도 걸림 없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법공은 법에 자성이 없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영원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장엄은 부처님을 꾸미는 온갖 장식을 이르는 말이다.
진리는 형체가 없다. 진리를 글로 쓴 것이 금강경 같은 경전이고, 그림으로 그린 것이 탱화, 수월관음도 같은 불화들이다. 조각으로 나타난 것이 불상과 탑 성덕대왕신종 등이다. 강우방 원장은 위대한 예술품에는 위대한 예술정신이 깃들어 말한다. 석굴암과 불국사를 비롯한 많은 예술과 마주했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만질 수 있는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는 흙먼지 이는 경주로 유학갔다.-『한국미술, 분출하는 생명력』
2001년에 출간된 책으로 《월간미술》에 연재했던 글이다. 간추린 한국미술사 편력이라는 부제가 붙은 체험적 한국 미술사를 정리한 것이다. 이 책에서 강우방 원장은 ‘친구들이 외국으로 유학갈 때 본인은 흙먼지 이는 경주로 유학했다. 그 이래로 미술사 공부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미술사 공부는 경주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흔을 향해가지만 지금도 그의 미술사 공부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땅에서 미술 공부는 ‘불교 공부가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도 진심이 담지 않는다면 피상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과 무릇 미술사학가는 작품 앞에서 글을 써야 한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경주 그리고 신라를 담은 사진 수상집-『영겁 그리고 찰나』
경주에 살며 신라의 벌(伐), 무덤, 석탑, 석불들을 바라보면서 찍은 사진과 글이 실린 수상집이다. 컬러사진 190컷과 흑백사진 43컷 그리고 「1970년대부터의, 옛 경주 시절의 회상」이 실려있다.
‘인간의 차원에서는 찰나(刹那)가 영겁(永劫)의 미세한 먼지와 같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크게 깨닫는다면 우리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면서 찰나를 영겁처럼 여기리라. 겁에서 찰나를, 찰나에서 겁을 느끼니, 영겁과 찰나는 불이(不二)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깊고 넓은 문장이다.
미술사학자에게 있어 사진 촬영은 논문, 작품의 스케치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기록 행위라고 강조한다. 강우방 선생은 2019년 평생을 연구한 개인 소장 기록물(1970년~1990년대 촬영한 사진자료 6만여 점)을 국가유산청에 기증했다. 필름 카메라로 문화유산 현장을 생생하게 촬영한 귀중한 자료들이다. 국가유산청 사이트로 들어가면 열람이 가능하다.
하나의 작품은 하나의 경전이다-『수월관음의 탄생 』
수월관음도는 한국의 미술을 대표하는 고려시대 그림이다. 아름다운 작품들이 수탈되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몇 점 없다.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 더 많은 슬픈 현실이다. 그만큼 너도나도 탐을 낸 최고 그림이다. 책에서 강우방 원장의 평생에 걸쳐 정립해 온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을 조금씩 따라가며 이해할 수가 있었다. 영기문, 연화화생을 비롯해 수월관음도를 읽는 눈높이를 조금 올릴 수 있었다. ‘하나의 작품은 하나의 경전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다.
미술사학가 또는 인문학자-『어느 미술사학가의 편지』
연화화생과 연기화생을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공적연지(空寂靈知)’라는 말에 매료되었다. 강우방 원장은 미술사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까지 통섭하고 있음에 놀랐다.
까뮈와 니체를 비롯한 문학과 철학 등 인문학 전반에 걸친 공부에 저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어떤 때는 햇빛 때문에 들판이 캄캄해진다’ 까뮈의 산문에서 나오는 문장을 「까뮈의 직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필자도 까뮈의 열렬한 팬이었다.
이 책은 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잡지 《유역》의 창간을 위해 경주까지 찾아온 임우기 평론가와의 오래된 인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책 뒤편에는 강우방 원장의 자작시가 몇 편 실려있다. 그 가운데 짧은 시 한 편 인용해 본다. 웬만한 시인 이상의 작품이다. 경주 어느 산기슭 마애불의 희미한 옷주름이 떠올랐다.여명이래/ 무늬는/ 신에/ 바치는/ 노래/ 사람은/ 하늘에/ 수 천 년/ 응답을 해놓고는/ 바보처럼 가사를/ 잊어버렸나 보다.-시 「잊어버린 노래」 전문
진짜 아름다움은 따로 있다-『예술 혁명일지』
‘우리가 알아보고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더 넓은 알아보지 않는 세계를 알아차리고 보게 되면 우리는 이제야 눈을 뜨는, 즉 개안(開眼)하는 감격을 누린다.’
최근 발표한 『예술 혁명일지』의 서문이다. 이 책은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예술품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이에게 건네는 초대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술 혁명일지』를 비롯한 수십 권의 저서를 다 읽어볼 수도 없을뿐더러 좁은 가슴으로 읽는다고 다 이해할 수 없다. 언급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다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가슴에 각인이 되는 몇 개의 말씀을 옮겨본다.
‘미술사학이란 본질적으로 조형 언어로 만들어진 미술품을 미술사학자가 해독하여 문자언어로 옮기는 작업이다’. 그러면서 ‘일상적인 언어로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때, 노래가 나오고 그림이 그려지며 춤이 추어지는 등 예술의 세계가 펼쳐진다’ 저절로 고개 끄덕여지는 멋진 말씀이다.
우리는 경주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미술과 예술 사이』
우리는 경주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 이 말은 저서 『미술과 예술 사이』에 나온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민족문화의 원형인 경주를 사수해야 한다.’ 비교적 강한 어조로 일찌감치 강우방 선생은 주장했다. 그리고 경주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경주 사람들은 유적 유물이 너무 많아 귀한 줄 모른다’라고 말했다. 옛 정취가 사라지는 경주의 난개발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학자로서 당연한 입장이었다.
〈개발 현황과 문제점〉이란 글을 박물관지에 게재한 이유로 유신시절 곤혹을 겪기도 했다. 그 난개발의 현장으로 바로 황용사와 천군리 사지를 예를 들기도 했다. 천군리 사지는 필자가 살고 있는 곳이다. 5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 천군리 사지로 가보면 현 상황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다. 개발이란 이름의 감옥에 갇힌 문화재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경주 사람으로 안타깝고 부끄럽다. 변화된 경주에 적잖이 실망하는 것은 그만큼 경주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술사학자 강우방 원장의 학문의 시작이 바로 경주이다. 다시 태어나는 그곳이 경주였으면 좋겠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일깨워 주실 것만 같다. 경주 사람보다 더 경주를 사랑한 강우방 원장님께 부족한 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혹여,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전인식 시인(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