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선비들은 주자의 학문과 삶을 따르는 것을 숭모해서 산수의 경치가 빼어난 승경에 은거지를 마련하고 학문과 수양에 힘썼다. 구곡원림의 경영과 구곡시가의 창작은 경북 청도의 운문산(雲門山)을 비롯한 동창천(東創川) 일대의 빼어난 승경의 구곡을 경영한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1479~1560)의 「운문구곡(雲門九曲)」과 「운문구곡가(雲門九曲歌)」가 앞선다. 태화강의 상류를 거슬러 오르면 언양 방면에서 흐르는 물과 사연댐 아래로 두 물줄기가 만나고, 사연댐의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수려한 경관을 지닌 대곡천과 반구대가 나타난다. 언양선비 도와(陶窩) 최남복(崔南復,1759~1814)과 천사(泉史) 송찬규(宋璨圭,1838~1910)는 주자의 무이구곡가를 차운해 「구곡가」를 지었는데, 특히 최남복은 대곡천 유역의 백련구곡(白蓮九曲)을, 송찬규는 사연호 유역의 반계구곡(磻溪九曲)에서 구곡을 경영하며 읊조렸으며, 이들은 울산 구곡문화의 원류로 자리한다. 앞서 강한(江漢) 황경원(黃景源,1709~1787)이 쓴「집청정기」를 보면, “경주에서 남쪽으로 70리를 가면 비래봉(飛來峰)이 있다. 익양백 문충공 정몽주 선생께서 유람하고 다녀가신 곳이다.… 비래봉의 남쪽에는 8칸의 묘우(廟宇)가 있는데, 문충공 포은 선생을 제사 지낸다. 그리고 비래봉의 북쪽에는 일찍이 정자가 없었는데, 처사 최신기 군이 물가를 지나다 포은의 명성에 사모하고 그 남은 충정을 그리워하여 비래봉의 북쪽에 작은 정자를 지었다. 구곡에 임해 있어 ‘집청정’이라 이름하였는데, 구곡의 맑은 소리를 모은다는 뜻이다”라고, 운암(雲岩) 최신기(崔信基,1673~1737)의 집청정을 언급하였다. 집청정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주변에 위치한 경주최씨 집안의 정자로, 운암 최신기가 1713년(숙종39)에 건립한 것이다. 그는 포은 정몽주의 유배와 그의 행적을 기리고, 공부하는 장소로 반구대 북쪽 언덕에 창고와 부엌을 갖춘 별업(別業)을 지었는데, 수많은 시인묵객이 반구대와 집청정을 찾아와 풍광을 시문으로 남겼다. 제암(霽巖) 최종겸(崔宗謙,1719~1792) 역시 「유거팔경(幽居八景)」·「제암팔절(霽巖八絶)」·「반구십영」 등을 지었는데, 최신기, 최종겸, 최남복 모두 정무공 최진립(崔震立)의 후손으로 긴밀한 유대가 있었다. 경주최씨 정무공파는 경주시 내남 이조를 중심으로 언양과 경주방면으로 분가해 세를 이뤘고, 경주의 학문이 울산과 언양으로 계승되는 발판이 되었다.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관서정기(觀逝亭記)」에서, “반구의 물은 동남쪽으로 흘러 곡연을 이루고, 또 몇 리를 흘러 언양의 물과 만나 태화강을 이룬다. 곡연은 여러 산 가운데 봉우리들이 좌우에 우뚝 솟아있고, 구름과 안개가 합하는 곳에 자리한다. 물에는 작은 돌과 헤엄치는 물고기가 많아 갈매기들이 많이 모여든다. 나그네 가운데 반구를 보고자 하는 자라면 반드시 곡연으로부터 시작하니, 그 뛰어난 경치는 대개 우열을 가리기가 힘이 든다.    김덕준(金德峻)이 부친을 모시고 곡연 곁에 살았는데, 집의 서남쪽 모퉁이에 두어 칸의 온돌방과 시원한 마루[관서정]를 지었다.”라며, 지금의 범서면 반구대에서 흘러나온 물이 언양 쪽의 물과 만나 태화강을 이루며 동해바다로 흘러가기 위해 합수하는 곳을 언급한다. 언양선비 김용한(金龍翰,1738~1806)은 어려서는 권상일의 제자인 종형 관덕정의 김덕준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그 뒤 수오(睡聱) 서석린(徐錫麟,1710~1765)에게 글을 배웠다. 권상일 역시 문경과 예천의 청대구곡을 경영하였고, 그의 산수관 역시 반구의 수려함이 녹아있다.    또 김용한은 평소 언양선비 수오 서석린·반계 이양오 그리고 최남복 등과 교유하며 반구동에 들어가 노닐며 집청정 차운시를 짓고, 반구서원의 중수기를 남겼으며, 서석린과 최종겸의 만사를 지었다. 서석린 역시 경주의 활산 남용만과 덕동마을의 이헌락·이여관 그리고 최종겸 등과 교유하며 집청정 차운시를 짓고, 경주의 화계 류의건·최천익 등 만사를 짓는 등 이들의 교유관계를 통해 구곡문화의 전달과 계승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은 필자가 2017년도 『울산학연구』에 게재한 「울산 구곡문화의 원류 고찰」을 인용한 것으로, 운암 최신기가 집청정을 짓고 산수를 벗 삼은 일이 가학으로 계승되고, 이것이 울산[언양]의 구곡문화에 영향을 미친 과정을 단편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경주최씨 은신처의 빼어난 경치가 언양의 선비 등에게 전해지고, 울산의 구곡문화가 빛을 발하는데, 당시 18·19세기 경주의 구곡문화가 울산 구곡문화에 계승되었다. 지역과 인물 그리고 문화의 발달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인물과 시대를 통해 서서히 전파되어 우리의 생활에 침투한다. 새해가 밝았다. 지역학 연구는 특정 지역의 연구만을 위시(爲始)함이 아니라, 공유의 문화로 이해해야 하고, 지역별 연구가 각각 활발해지면 조선의 스토리 역시 방대한 자료의 집합체가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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