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라 캤나......니가 올해 몇살이고?”
서당에서 글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준이 막 사랑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며칠 전부터 작은 사랑채에 묵고 있던 할아버지가 마침 댓돌에서 신을 꿰고 있다가 공손히 읍하는 자신을 불러 세웠다. 준이 마루에 앉은 할아버지를 마주 보았다. 깡마른 얼굴, 긴 수염에 한없이 자애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을 쏘아보는 듯한 묘한 눈빛을 가진 할아버지였다.
“예, 올해 열두 살 됩니더”
열두 살이라는 말에 할아버지가 잠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에게 오라고 손짓을 해보였다. 준은 ‘잠깐만 기다려 주시소’하고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큰사랑채에 들러 아버지께 돌아왔음을 고하고 곧 바로 할아버지가 기다리는 별당 댓돌 아래 섰다.
“올라와서 좀 앉어라”
준이 대청마루로 올라오자 할아버지는 준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방이 좀 이상했다. 누가 가져다 두었는지 방 한쪽에는 짚 몇 단이 널부러져 있고 바닥에는 잘 짠 멍석이 하나 놓여 있다. 멍석 위에는 꼬다 만 새끼가 길게 늘어져 있다.
할아버지가 멍석에 앉자 준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니 몸에 하늘님이 계신다. 그 몸을 팬하게 해 드래야지”
준은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몰라 잠자코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런 준을 보며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가 새끼를 꼬면서 말했다.
“그냥 팬하게 앉아라는 말이다”
준은 ‘괘안심더’라고 한 후 계속 꿇어앉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언제든지 다리가 제레부믄 편하이 앉아도 괘안타’며 엷게 웃었다.
할아버지 새끼 꼬는 솜씨는 특별했다. 똑같은 지푸라기를 가지고 희한하게 다른 이들이 꼰 새끼보다 가지런하고 쪽 곧은 것이 솔솔 빠져나온다. 준은 신기한 듯이 할아버지가 새끼 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넌지시 물었다.
“니는 내가 누군지 아나?”
준이 새끼 꼬는 손에서 할아버지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아부지께서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큰 어른이라카는 말씀을 하셨지만 더 이상은 말씀이 없었심더”
준은 들은 대로 고했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어른이라...!”
새끼 꼬기를 잠시 멈춘 할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니는 나라가 머라꼬 생각하노?”
준은 망설였다. 갑자기 물은 말에 당혹스러웠다. 그렇지만 나라가 나라지 여기에 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라는 임금님이 다스리는 땅 아인기요?”
할아버지가 멈칫했다. 이어지려던 할아버지의 새끼꼬기가 다시 멈추었다.
“임금님이 다스리는 땅이라꼬?”
준이 ‘예’하고 대답했다.
“그라믄 니는 백성은 머라꼬 생각하노?”
준은 망설였다. 역시 백성이 백성이지 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할아버지가 묻는 뜻을 알 수 없었다.
“백성은 나라 안에 사는 사람 전부가 다 백성 아입니까!”
준의 대답에 할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할아버지가 잠시 새끼 꼬기를 멈추었다.
“그라믄 니는 이 나라가 누구 꺼라고 생각하노?”
이건 쉬운 답이다.
“이 나라는 임금님 꺼라꼬 생각합니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준이 보기에 건성으로 끄덕이는 것이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눈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준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듯 다시 새끼를 꼬며 말을 건넸다.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 전부를 다스리는 기 임금이까네 이 나라가 임금의 꺼라꼬 생각한다는 기가?”
하루 종일 새끼만 꼬는 이상한 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온 이후 작은 사랑채에는 할아버지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아랫목 한쪽에 마련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으레 그 자리가 새끼 꼬는 할아버지의 자리인 것으로 인정하여 그 경계를 넘어가지 않았다. 비록 작은사랑 전체를 다 쓰고 있지는 않지만 할아버지의 위상이 큰 것만은 분명히 여겨지는 모습이었다.
“임금님을 보고 나랏님이라 카는 거는 이 나라가 임금님 꺼니까 그라는 거 아입니까?”
준의 대답에 할아버지는 빙긋 웃었다.
“준아, 그라믄 준이라 카는 사람의 주인은 누구라꼬 생각하노?”
준은 이번에는 쉽게 대답했다.
“저의 주인은 저라꼬 생각합니더”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와, 니를 낳아 주신 분들이 너거 아부지 어무이니까 그분들이 니 주인 아이가?”
“아버지께서 저의 주인은 저라꼬 갈체 주셨심더”
“그라믄 보자. 이 나라가 임금님 꺼믄 니도 이 나라에 속한 사람이까네 니 주인은 임금이라야 대는 거 아이가?”
준은 대답할 말을 잃었다. 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자신의 주인은 자기라는 말과 백성들이 임금님의 것이라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라믄 백성은 누구 껍니까?”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었다.
“니 주인이 니꺼믄 백성의 주인도 당여히 백성이라야 대는 거 아이가?”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준에게 좀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준이 무릎걸음으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자 할아버지가 준의 손을 잡아끌어 준 자신의 가슴에 대어보라고 시켰다. 준이 가슴에 손을 대고 있자 할아버지가 목소리를 지긋이 낮추며 말을 이었다.
“준아 가슴에 손을 얹고 있으니까 손에 뭐가 느껴지노?”
준이 대답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게 느껴집니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느릿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그래,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하늘님이라카는 분이 살아 기시는데 바로 그 콩닥콩닥 뛰는 게 니 속에 있는 하늘님이 살아 기신다는 증거인 기라”
준은 도대체 이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슴 속에 하늘님이 살고 있다니 그 어마어마한 하늘님이 하늘에 계시지 않고 왜 자신의 가슴 속에 들어앉아 있다고 하시는 것일까? 이걸 도대체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준은 그윽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무섭거나 싫지는 않았다. 준은 용기를 내서 물었다.
“할배요. 제 가슴 속에 하늘님이 기시믄 그라믄 제가 하늘님이라는 말씸입니꺼?”
할아버지가 흡족한 미소를 띄었다.
“글치, 글코 말고. 니가 하늘님이다. 바로 니가 그 하늘님이야 !”
할아버지가 하도 반갑게 ‘니가 하늘님’이라고 하는 바람에 준은 짐짓 놀라서 뒤로 물러나 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아버지는 다시 새끼를 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손 사이에서 몇 가닥의 지푸라기가 거짓말처럼 빨려 들어가면서 촘촘한 새끼가 되어 흘러내렸다.
“글치만 니가 하늘님인 거 맨치로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늘님이다. 남자고 여자고, 어른이고 얼라고, 양반이고 상놈이고 다 하늘님이다. 그라이 니는, 니 가슴 속에 있는 하늘님을 잘 모세야 대듯이 다른 사람들 가슴 속에 있는 하늘님도 잘 모세야 댄다 알겠제?”
준은 그날 할아버지가 한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한동안 생각을 가다듬어야 했다. 내 가슴 속에 하늘님이 계신다. 내 가슴 속에 하늘님이 계신다. 다른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하늘님이 계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린 준에게는 수수께끼 같은 말씀이었다.
그러나 준은 할아버지가 지금 당장은 말고 커 가면서 조금씩 생각해 보라며 더 어려운 말씀 하나를 남겨 놓았음을 상기하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 서당과 책에서 배운 것과는 너무 거리가 먼 말씀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백성들의 마음 속에 하늘님이 있는 거 맨치로 백성들의 주인은 마케다 백성들 저거 자신인 기라. 그라이 이 나라 이 강토도 알고 보믄 백성들 꺼지 임금님 꺼는 아이다 카는 기다. 임금님은 백성이 주인인 이 나라를 쪼매라도 팬하고 덕시럽게 다스리는 또 다른 백성인기라. 냉자 니가 어른이 대믄 이기 무신 말인지 니도 알게 댈 끼다”
새끼를 꼬며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얼굴로 먼 창의 햇살 한 뼘이 떨어져 내렸다. 묘한 할아버지의 주름이 훨씬 더 깊게 느껴진다고 준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