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는 결혼식과 장례식이 있으면 장례식을 간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어른들이 그렇다길래, 슬픈 일에 와주는 사람이 진짜 지인이라는 둥, 책에서든 지인에게서든 많이 들었고 귀에 인이 박혔다.
몇 번의 장례를 치른 지금, 아줌마는 알게 되었다.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챙겨야 하는 진짜 이유를.
아줌마의 결혼식은 너무나 행복했다. 즐거웠다. 넘치는 행복감에 주체를 못했다. 반면에 아버지의 장례식은, 어머님의 장례식은….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어리둥절하고 당혹감이 밀려오고, 현실적이지 않다. 그냥 실감이 나지 않는다. 눈물이 흐르고 순간순간 슬픔에 빠지지만, 찾아와주신 손님들 맞이하느라 정신줄을 잡는다. 먼 길을 한걸음에 찾아와주신 지인에게 감사하고, 뜻밖의 위로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확인받기도 하면서, 깊은 슬픔을 느껴야 할 순간에 다른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뒤늦은 슬픔이 몰려온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맞이한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울어보기도 하고, 식욕을 잃기도 하고, 멍하기도 하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손님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장례를 마치기도 전에 아줌마가 먼저 쓰러졌을 것이다.
손님을 맞이하고 친인척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이런저런 손님맞이를 위한 일과 장례를 치르는 그 모든 과정의 일들은 누군가를 여읜 가족에게 ‘텀’을 준다. 그 ‘텀’은 슬픔의 ‘쉼’이기도 하고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아줌마는 반백의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다 큰 아줌마가 반백이나 되어서 아버지를 여읜 것은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여읜 것보다 덜 슬프고, 덜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아줌마는 이제야 안다.
부모를 여읜다는 것은, 아이라도, 어른이라도, 할아버지·할머니라도 슬프다는 것을, 아줌마는 이제야 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아픔이나 슬픔이 찾아오면 아이도 엄마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엄마를 찾는다는 것을, 아줌마는 이제야 안다. 일흔에 돌아가셔도, 백 세에 돌아가셔도 호상이란 없음을, 아줌마는 이제야 비로소 안다. 장례식이란 돌아가신 이와 남은 이들을 위한, 모두의 텀, 쉼임을 아줌마는 이제야 알게 됐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기나긴 슬픔이 시시때때로 찾아오리란 것을 아줌마는 안다. 주책맞게 눈물이 어울리지 않는 순간에 떨어지리라는 것도 아줌마는 안다. 갱년기를 흉내 낸 감정의 기복이 앞으로 몇 달, 몇 년을 아줌마와 벗하게 될지도 아줌마는 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점점 옅어지리라는 것도 아줌마는 안다. 아줌마는 오늘을 살아간다.
아줌마는 내일도 살아갈 것이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서.
그것이 아줌마의 아버지와 아줌마의 시어머님의 삶이셨다.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셨다. 살다가 돌아가는 마지막 길에도 몸소 실천해주신 삶, 그 가르침이었다.
치매를 앓으시면서도 마지막 한숨까지 지탱해주신 삶,
여자의 삶을 포기하고 어머니의 삶으로 아이들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신 삶.
그 자체로 아줌마는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루라도 헛되이 보낼 수 없는 삶의 태도를 배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삶이라는 것을, 그 무게를 버겁게 느낀다. 그 버거움만큼 가슴 벅참도 느낀다. 아줌마가 살아갈 삶에는 부모님의 삶도 시부모님의 삶도 녹아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삶에도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이들에게도.
아줌마는 오늘을 살아간다.
가장 찬란한 삶은 아닐지라도, 눈이 부시게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