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낭만발레로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는 작품은 지젤(Giselle)이다.
지젤은 당대의 드림팀이 만들었다. 대본을 고티에(Theophile Gautier, 1811-1872)가 쓰고, 음악은 아당(Adolphe Charles Adam, 1803-1856)이, 안무는 페로(Jules Perrot, 1810-1892)가 맡았다. 아당은 낭만발레시대 최고의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다. 가르니에 극장의 자랑인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천장화에는 기라성 같은 14명의 작곡가가 대표작과 함께 그려져 있는데, 아당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페로는 까치발의 선구자 탈리오니의 상대역으로 활약할 정도로 탁월한 기량을 가진 발레리노였다. 후에 러시아에 건너가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마스터로 활약했고, 프티파(Marius Petipa, 1819-1910)가 고전발레를 완성하도록 초석을 놓았다. 낭만발레 지젤을 둘러싼 재미난 비하인드 스토리는 고티에와 그리시(Carlotta Grisi, 1819-1899)에게서 비롯된다. 고티에는 당대 최고의 극작가였고, 그리시는 탈리오니 이후 최고의 발레리나였다. 그리시의 흉상이 가르니에 극장에 남아 있을 정도로 그녀가 남긴 족적은 위대했다. 고티에는 이런 그리시를 염두에 두고 스토리를 짤 정도로 그녀를 연모했다.
하지만 그리시의 연인은 그녀를 알아보고 스타로 만들어준 페로였다. 가슴만 끙끙 앓다가 고티에는 그리시의 언니와 결혼하고 만다. 딸을 둘이나 두었지만 살아생전 고티에의 마음속엔 늘 그리시가 남아있었다. 심지어 그가 생을 마감할 때 부른 이는 아내가 아닌 처제였다.
지젤의 스토리를 보면 고티에를 이해할 수 있다. 지고지순한 고티에의 심성은 발레의 주인공 지젤과 닮아있다. 발레에서 지젤은 자신을 사랑했던 귀족 알브레히트를 죽어서도 사랑한다. 그가 자신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말이다. 고티에는 지젤이 알브레히트를 사랑한 것처럼, 현실에서 그리시가 자신을 사랑하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젤이 그 유명한 매드 씬(mad scene)을 펼치고 죽어버리는 비극은 고티에가 사랑을 바로 앞에 두고 평생을 그녀의 언니와 살아가게 되는 괴로운 삶 그 자체였다.
지젤은 발레를 공연예술로서 새로운 경지에 올린 라 실피드의 성공에 자극받아 1841년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라 실피드처럼 푸앵트와 로맨틱 튀튀(종모양의 긴치마)라는 낭만주의 형식이 매우 뚜렷하다. 또한 프랑스 혁명 이후 미쳐가는 사회상을 오페라의 광란의 아리아처럼 매드 씬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성 무용수가 남성 무용수만큼이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파리의 낭만발레는 순항할 것처럼 보였지만, 1868년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낭만주의 발레는 급속하게 퇴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