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가 한창 발레에 빠져 스스로 공연의 주인공으로 출연할 당시의 발레는 남성의 예술이었다. 발레의 중심인물이 여성 무희가 아니라 남성 무용수였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18세기에도 계속되었다. 남성 무용수는 바지를 입고 발레를 했다. 반면, 여성 무용수는 바닥까지 내려오는 긴 스커트를 입고 춤을 췄다. 따라서 여성 무용수는 아무래도 남성보다 동작에 더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기교를 부리더라도 관객들은 치마에 갇혀있는 다리를 볼 순 없지 않은가? 더욱이 여성이 발목을 노출하는 건 시대의 금기사항이었다. 이때 발레계의 반항아가 나타난다. 1726년 파리에서 데뷔한 벨기에 태생의 마리 카마르고(Marie Camargo/1710-1770)는 발목 위로 스커트를 자르고 무대에 등장하여 금기를 깨버린다. 당시 복사뼈를 가릴 정도로 길었던 무용 스커트를 무릎과 복사뼈의 중간에 닿을 정도로 짧게 만들어 입었던 것이다. 또한 하이힐에 가까웠던 무용 신발의 뒷굽을 떼어 냈다. 이제 여성 무용수도 바지를 입은 남성 무용수들처럼 편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 무용수의 발목이 노출되고, 신발 뒷굽이 낮아지면서 여성 무희들은 도약하며 수직동작을 연출해냈다. 대표적인 동작이 앙트르샤다. ‘앙트르샤’는 교차하기라는 뜻으로 무용수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두 다리를 빠르게 앞뒤로 서로 교차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두 번 교차할 때는 앙트르샤 되(Entrechat deux), 네 번 교차할 때는 앙트르샤 캬트르(Entrechat quatre), 여섯 번 교차할 때는 앙트르샤 시스(Entrechat six)라고 부른다. 마리 카마르고는 앙트르샤 캬트르(entrechat quatre)를 최초로 시도한 여성 무용수로 알려져 있다. 카마르고의 시도는 발레리노 전성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매우 파격적이었다. 무대 위에서의 반응도 꽤나 뜨거웠으리라! 스커트 끝단은 고작 발목 위 15cm 정도였지만, 여성 무용수들을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발레복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이후에는 종 모양의 로맨틱 튀튀가, 접시 모양의 클래식 튀튀가 속속 등장하며 각각 낭만발레와 고전발레를 상징했다. 스커트 길이는 점점 짧아져 갔다. 그럴수록 여성 무용수들의 하체 테크닉은 급속히 발전해갔다. 바야흐로 남성들의 발레시대가 저물고, 발레리나의 전성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혁신적인 무희였던 마리 카마르고는 당대의 패션리더이기도 했다. 카마르고가 편집한 발레의상은 매우 큰 인기를 끌었다. 더불어 그녀의 헤어스타일, 액세서리, 그리고 신발까지도 카마르고 풍(風)이라 불리며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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