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생들에게 발레의 발상지가 어디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러시아라고 답을 한다. 일부는 ‘발레’라는 단어가 불어라고 하며 프랑스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긴 발레 용어가 대체로 불어고, 볼쇼이발레단이 우리나라에선 가장 유명한 발레단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발레는 이탈리아 태생이다. 오페라처럼 르네상스의 산물인 것이다.
발레 용어가 불어로 된 이유는 뭘까? 이탈리아 발레는 궁정에서 사교를 위한 제스처였다. 이것을 메디치 가문의 한 여성이 프랑스 왕에게 시집오면서 프랑스에 전파된 것이다. 프랑스 왕들은 이것을 발레(ballet)라 칭하고 장려했다. 특히 태양왕 루이 14세는 스스로 발레리노가 되어 발레극에 참여했고, 오늘날 파리국립오페라의 전신이 된 발레학교를 열었다. 이러다 보니 발레 용어들이 온통 불어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혁명을 거쳐 낭만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발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장르가 되었다. 천상에 더 가깝기 위해 뒤꿈치를 올리는 까치발 동작(푸앵트)과 종 모양의 긴 튀튀(로맨틱 튀튀)는 낭만발레의 아이콘이 되었다. 라 실피드(1832년)와 지젤(1841년)은 낭만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두 작품에 모두 등장하는 백색발레(블랑발레) 씬은 고전파 발레에도 계승되어 군무씬의 압권으로 뽑히고 있다.
19세기 초중반을 풍미하던 낭만발레는 프랑스에서 급격하게 퇴조한다. 당시 발레계의 관행에 환멸을 느낀 발레인들은 터전을 러시아로 옮긴다. 러시아 황실이 발레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장려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인상파 작가 드가는 1500여개의 그림과 조각으로 당시의 발레계를 꼬집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에투알’과 ‘14세 발레리나 마리의 조각상’이다.
우리는 음악사에서 낭만파에 앞서 고전파가 음악규칙과 형식을 만들어 냈음을 알고 있다. 낭만파는 고전파가 만들어 낸 규칙과 형식을 깬 사람들이다. 그런데, 발레는 특이하게도 낭만파가 고전파에 선행한다. 먼저 낭만발레의 꽃을 피운 후 엄격한 형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프랑스 출신의 안무가 프티파(Marius Petipa, 1819-1910)가 러시아에서 이룬 업적이다. 낭만발레의 파드되를 업그레이드한 그랑 파드되, 이야기와 상관없이 흥을 돋는 디베르티스망, 32회전 고난도 푸에테는 고전발레의 대표적인 형식이 되었다.
러시아 발레가 온 유럽을 장악한 것은 디아길레프(Sergei Pavlovich Diaghilev, 1872-1929·인물사진)의 공이 크다. 동향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 천재 무용수 니진스키(Vaslav Nijinsky, 1890-1950)와 함께 활약한 발레뤼스(러시아발레단)는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불새, 페트로슈카, 봄의제전이 발레뤼스의 주요 레퍼토리다. 하지만 1929년 디아길레프의 사망 후 발레뤼스는 거짓말처럼 해제된다. 발레뤼스의 주요 멤버는 유럽으로, 북미로 이동해서 해당 대륙의 발레선구자가 된다. 예를 들어, 미국으로 간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은 미국 발레의 아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