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보통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곤 한다. 연말 기획으로 주로 교수신문에서 공표한다. 한 해를 상징하거나 정리한다는 의미라면 사진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올해를 대표할 수 있는 사진이나 이미지를 꼽아보니 세 장면이 떠오른다. 지극히 사적인 기준에서 뽑았지만 뭐 어떠랴. 올 한 해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지극히 개인적 감상이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다르질 않구나 확인하는 즐거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내 마음대로(?) 뽑은 올해의 작품들 그 첫 번째는 그림이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을 잘 견뎌냈다는 보상이랄까, 꿈에도 예상치 못한 낭보였다. 그저 다른 나라의 잔치 정도로만 알고 있던 노벨문학상(Nobel Prize in Literature)을 우리에게 깜짝 선물한 소설가 한강의 초상화가 그것이다. 노벨위원회 홈페이지에 걸려있는 이 그림에는, 작가 특유의 졸리는(?) 듯한 눈빛에 수줍은 미소로 조곤 대는 목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검은색 붓으로 무심하게 얼굴을 표현했고 그 음영이 머무는 곳마다 재미있게도 금빛 그림자가 머금어져 있다. 바로 옆에 쓰인 수상평에도 그 오묘한 대조는 이어진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한 줄의 문장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 한국 사회는 그녀의 수상으로 촉발된 두 개의 상이한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범’을 꼬집은, 저 멀리 스웨덴 한림원의 안목이 예사롭지 않다. ‘미동도 없이 강렬’했던 자화상이 있다면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강강(强强)인 사진도 있다. 그 속에는 귀에 피를 흘린 채 주먹을 높이 불끈 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뚝 서 있다. 온몸을 던져 그를 지켜내려는 경찰들, 미리 짜놓기라도 한 것처럼 전직 대통령 손에 들려있기라도 한 듯 펄럭이는 성조기, 이 모든 걸 무심히 감싸고 있는 파란 하늘로 역사의 한 장면은 완성되었다. 붉은 피로 번진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싸우자, 싸우자(fight)!” 하는 외침은 실제 들리는 듯 현실적이다. 단상 밑에 있다가 우연히 피격 장면을 찍은 AP사진기자 에번 부치(Evan Vucci)는 말한다. “동영상은 정지한 프레임(frame)과 비교할 수 없다. 정지한 프레임(사진)은 그 순간을 그대로 멈추게 하고 그것을 우리로 하여금 응시하게 한다.”  동영상도 정지된 화면들의 연속이지만 사진과는 분명 구별된다. 무엇보다 사진은 보는 자의 능동적 참여를 허용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영어에 ‘put someone in the picture’라는 표현이 있다. 마치 ‘한 장의 사진 속에 상대를 집어넣을 듯’ 왜곡 없이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겠다’는 의미처럼 말이다, 사진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상황) 속을 거닐며 차근차근 곱씹어 볼 여지를 마련한다. 피격당한 전직 대통령의 ‘싸우자!’는 거듭된 주문은 개인이든 집단의 형태이든 인간은 여전히 반목 중이고, 그 대척점에 대한 맹목적 분노 표출로 존재 의미가 정당화되고 있음을 온전히 담고 있다. 올해도 개인적으로는 여린 우리가 여전히 정치나 집단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반목하고 또 경쟁하고 있다. 이번에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들과 셀카를 찍는 모습이 찍힌 한 장의 사진이다. 인간을 닮은 로봇은 생일을 맞이한 시민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어슬렁거리다 가위바위보도 한다. 사람들과 제법 잘 소통하고 어울린다. 어떤 이가 점프할 수 있냐고 묻자 “언젠가는...” 하고 대답하고,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묻자 “사람처럼 되는 거”라고 받아친다. 일론 머스크는 “대량 생산된 휴머노이드 로봇은 우리에게 풍요롭고 빈곤 없는 미래를 선사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로봇 얼굴에서 ‘실험실에서 이젠 인간 세상으로 뛰쳐나온 불확실한 미래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스친다. 세 장의 사진은 각각 다른 배경과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직 두 달이 남았기에 살짝 성급한 올해의 사진은 그러나 우리가 지금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묻고 있다. 분명 이런 성찰의 순간들이 모여 또 다른 내일을 만들어 나가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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