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부부상
박재삼
흥부 부부(夫婦)가 박덩이를 사이 하고
가르기 전에 건넨 웃음살을 헤아려 보라
금(金)이 문제리
황금 벼 이삭이 문제리
웃음의 물살이 반짝이며 정갈하던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
없는 떡방아 소리도
있는 듯이 들어 내고
손발 닳은 처지끼리
같이 웃어 비추던 거울면(面)들아
웃다가 서로 불쌍해
서로 구슬을 나누었으리
그러다 금시
절로 면(面)에 온 구슬까지를 서로 부끄리며
먼 물살이 가다가 소스라쳐 반짝이듯
서로 소스라쳐
본(本)웃음 물살을 지었다고 헤아려 보라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
우리 말의 요체를 아는 시인의 광채
가난은 인간을 ‘낡게’ 한다. 가난 때문에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바랜다. 가난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연인들도 많다. 그러나 가난해도 아름다운 사람은 있다. 그 가난은 인간을 성숙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박재삼은 『흥부전』의 박 타는 장면에서 흥부 부부의 마음을 ‘맑은 가난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인간성’으로 새로이 해석해 낸다. 그렇다. 박을 탈 때 그들은 금은보화를,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기대하지도, 분질러진 다리를 고쳐준 제비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정갈한 소찬이나마 흡족히 먹을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설렘은 박을 가르기 전에 그들 부부가 나눈 ‘웃음살’로 나타나는데, 그 웃음살이 “같이 웃어 비추던 거울면(面)”에 어린다. 내가 웃으면 네가 웃는, “없는 떡방아 소리”를 당겨서 듣는 백결 선생 같은 얼굴. 그러나 그 웃음은 연민을 머금기도 한 것이어서 서로 ‘구슬’(눈물 방울)을 나눈다. 그러다 눈가를 타고 얼굴에 굴러온 눈물 방울(구슬)을 보고는 서로 부끄러워 하다 ‘우리가 여기서 왜 울지?’ 몸을 떨 듯이 움직여 참웃음(“본(本)웃음 물살”)을 짓는다. 웃음은 연민을, 다시 연민에 대한 부끄러움을 거쳐 진정한 웃음에 이른다.
불안정한 마음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울음이 타는 가을강」)이라 명명했던 시인은 굳이 어려운 수사를 쓰지 않고, 쉬우면서도 명징한 말(‘웃음살’,‘거울면’,‘구슬’)로 시적 아름다움과 정서를 배가시킨다.
여기서 또 하나, 시인이 의도적으로 쓴 표현을 발견한다. ‘문제’라는 말이다. 이 말은 ‘너는 정직하지 못한 게 문제야’ 할 때의 의미를 굴절시키는 지점에서 파생한다. 다시 이 시어는 어법의 활용(“문제리”, “문제다”)을 통해 가치관의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며, 완전히 못 박는(“확실히 문제다”) 역할을 하는 이채로운 장치로 작용한다. 만약 ‘문제’라는 말 대신에 ‘소중하다’라는 말을 썼다면 나타날 수 없는 효과다.
박재삼, 그는 우리 말의 요체를 알고 쉬운 말들의 창조를 통해서도 시가 광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체득한 드문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