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를 먹다가 죽을 수도 있을까? 장난 삼아 물어본 건데 진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미국에 사는 14세 소년이 ‘파퀴(Paqui) 칩스’라는 매운 과자를 먹고 실제 죽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 SNS에서 유행인 매운맛 챌린지를 하다가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다. 그 과자에는 리퍼 고추와 나가 바이퍼 고추가 함유되어 있다고 하는데, 리퍼(Carolina Reaper)는 기네스 세계 기록을 가진, 가장 매운 것으로 공식 인정받은 고추이다. ‘과자를 먹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아무 음료도 마시지 말고, SNS에 올려서 사람들 반응을 볼 것!’. 세상에서 제일 매운 고추와 그 고추를 교배해 만든 고추로 만들었다는 과자 포장지에는 이런 챌린지 규칙이 적혀 있다. 아니, 아무리 챌린지도 좋고 소셜 네트워크도 좋지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접근성 좋은 과자에다가 심장에 무리가 가고 부정맥을 일으킬 정도의 고농도 캡사이신을 첨가했다면 이건 좀 다른 이야기다. 과자는 겉과 속 모두 뻔뻔한 판촉 방식과 노골적인 홍보밖에는 없어 보인다. 힘든 운동을 하다가 보면 정말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온다. 숨이 턱턱 막히는 그 힘든 고비를 억지로 넘기다 보면 어느새 천국의 느낌을 맛보는 순간이 온다. 외롭고 힘든 레이스를 펼치던 마라톤 선수가 무릎이든 호흡이든 고통이 정점에 이르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맛보게 되는 짜릿한 쾌감이나 도취감이라고 해서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다. 문제는 이걸 한번 느끼게 되면 그 맛을 절대 잊지 못한다는 거다. 자꾸 맛보고 싶어지는 거다. 억수로 오는 비를 홀딱 맞아가며 홀로 러닝을 하고 있다거나 무릎이 아프다며 울다시피 하면서도 운동화 끈을 묶고 있다면 그는 분명 이 맛을 아는 사람일 공산이 크다. 누구는 헤로인이나 모르핀을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딱, 그 정도의 의식 상태나 행복감이라고 표현했다. 흥미로운 건 매운 걸 먹을 때도 그 지락(至樂)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름하여 스파이스 하이(Spice High)다. 중독성이 아주 강한, 매운맛 마약인 셈이다. 어른들은 흔히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된다지만 기업은 끊임없이 맵부심(매운맛+자부심)’을 교묘하게 자극한다. 붉은 얼굴이 터져버릴 듯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매운 음식을 먹고 또 그 영상을 올리는 챌린지 열풍 이면에는 바로 이 전염성 강한 스파이스 하이가 작동하고 있다. 매운 라면은 식사용이라기보다는 태생부터가 재미나 챌린지용으로 소비될 여지가 다분하다. 덴마크에서 한국의 특정 매운 라면만 전량 회수한 것도 매운 것보다 중독의 위험성을 크게 본 것이다. 월마트나 코스트코 같은 미국 대형 마트에서도 매운 라면이 인기 상품이다. 붉닭볶음면의 경우 한국처럼 5개들이 한 봉지가 우리 돈으로 만 오천 원 정도로 비싼데도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생일 선물(!)로 핑크색 붉닭면을 받아 들고 감격해 우는 미국 소녀 영상이 화제다. 꼬마 숙녀는 받은 선물로 바로 먹방 영상을 찍어 올렸더니 조회수가 무려 6200만 뷰를 기록했다고. 예상치 못한 초대박 홍보에 흥분한 라면 제조사는 소녀 집 대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자 까르보나라 붉닭볶음면이 무려 150박스가 소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화끈한 선물을 받았지만 어느 누구도 화장실에서 고통스러워할(?) 소녀의 현실적 고통엔 관심들이 없다. 핑크빛 매운맛이 심상치가 않다. 얼마나 맵고 중독성이 있는지 매울 신(辛) 자가 쓰인 라면으로 유명한, 40년간 1위를 해온 기업을 싱겁게 만들어 버렸다. 핑크색 봉지 라면을 국내에 선보인 지 12년 만이다. 이제 세상으로 그 외연을 넓히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거치면서 라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다, 주 소비층이 아시아인에서 백인과 히스패닉계로 확대되었다. 게다가 〈기생충〉 같은 한국 영화(기억난다. 채끝살이 든 짜파구리)나 한국 드라마도 라면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이슬람교도들을 위해 할랄 인증을 받았고 매운 불닭면에 ‘똠얌(태국)’, ‘마라(중국)’, ‘야키소바(일본)’를 넣는 식의 현지화도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경상도 부자(父子)의 대화다. 아버지: 라면 끄리라. 아들: 맵게 끓일까예? 아버지: 두 개! 아들: 맵게 끓일까예? 아버지: 두 개! 아들: 맵~게 끓일까예!! 아버지: 두!!개!! 귀가 어두운 게 아니다. 아버지에게 매운 건 그저 디폴트(기본)값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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