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감로를 차로 달려가다가 문무대왕면을 지나 감포 초입, 전촌으로 들어서니 안개가 자욱하였다. 아침 시간에 날이 덜 밝았나 착각할 정도였다. 바다 해무였다. 바닷가에 놀러다니곤 했지만, 경주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바닷물도 보이지 않고 파도도 치는지 안 치는지 알 수가 없다. 하늘도 보이지 않는다. 온 세상이 하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어 보였다. 안개를 뚫고 감포공설시장으로 가니 주차장에 차보다 외지에서 온 상인들이 펼쳐놓은 옷 난전이 많았다. 여자들 옷, 남자들 반바지, 꽃 치마, 여자 통바지, 남자 웃옷 등등. 옷 파는 가게만 7~8개 정도 되었다. 현대식으로 잘 만들어진 공설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 감포는 항구답게 생선 파는 상점이 주류를 이루었다. 오징어, 아구, 대구, 새우, 조개 등 내가 모르는 여러 종류의 생선들이 각 점포마다 주류를 이루었다. 파리를 쫓기 위해 자동으로 돌아가는 장치도 처음 보는 것으로 신기했다. 어떤 가게는 선풍기를 세게 틀어놓고 오가는 손님들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한 바퀴 돌아 감포항 쪽으로 나오니 이곳에는 할머니 50여 분이 각자 자기 밭에서 키운 호박잎, 상추, 부추, 호박, 산나물, 풋사과, 복숭아, 고추, 가지, 오이 등을 전을 펼쳐 팔고 계셨다. 모두가 할머니였고 할아버지나 아저씨는 한 분도 없었다. 이 또한 신기한 광경이었다. 보통은 남자들이 일하고 여자는 가정일을 하는데 장사는 여자가 잘하는 모양인 것 같다. 아주머니 한 분은 갓 잡아 온 홍합을 한 바구니 팔고 있었다. 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또 한 바구니 가져와서 옆에 놓고 간다. 손질되지 않은 아주 거칠었고 바위에 붙어 있던 생긴 그대로 모습으로 장터에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멍게도 팔고 있었는데 갓 잡은 듯 아주 싱싱해 보였다. 여러 손님들이 가격을 물어보고 사려고 하였다. 다시 잘 정돈된 49개의 점포가 있는 감포공설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 저곳을 살피든 중 미주구리 말려서 뼈를 다 추려낸 건포를 보았다. 먹음직해 보였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한 판에 2만원이라고 한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1만원 정도 하면 사고 싶은데 어떻게할까 잠시 머뭇 주저했다. 상점 주인이 그냥 먹어도 맛있다고 한 개를 주었다. 먹어보니 냄새도 나지 않고 생선을 먹는 기분이었다. 고향에 조금 덜 송금하고 나도 맛난 것을 한번 먹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판을 샀다. 집에 가서 구워먹고 고추장에 찍어 먹고 살짝 조려 먹고 감자 넣고 찌져 먹어야겠다. 상점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감포의 연혁을 기록한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신라6촌 중 금산가리촌에 속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현종 때 장기현에 포함되어 경주속현이 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경주군 동해면이 되었다가 장기군에 편입됐다. 일제 강점기에 장기군의 폐지에 따라 경주군 양북면에 편입되었다가 양북면에서 분리되어 1937년 감포읍으로 승격됐다. 이후 경주시제의 실시로 군명칭이 월성군으로 개정됨에 따라 월성군에 소속되었다가 경주군으로 명칭이 바뀜에 따라 경주군에 속했다가 경주시군 통합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감포라는 명칭은 지형이 甘자 모양으로 생겼고 또 감은사가 있는 포구라 하여 감은포라 부르다가 음이 축약되어 감포라고 칭하게 되었다. 동해남부의 어업전진기지로 9개 법정리, 20개 행정리, 22개 반으로 구성되었고 52개 자연부락이 있다. 31번 국도 남쪽 32km 지점에 울산광역시가 있으며, 북으로는 32km 지점에 포항시가 위치해 있고, 4번 국도의 서쪽으로는 보문관광단지가 있으며 전촌, 나정, 오류해수욕장과 횟집으로 유명하다.’ 감포공설시장은 시설면에서 아주 잘 갖추어진 전통시장이다. 나의 고향 스리랑카에는 이처럼 현대식으로 잘 만들어진 전통시장이 없다. 대한민국이 경주가 부럽다. 경주에서의 나의 삶도 이제 20여년이 넘었다. 나도 경주사람이다. 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지로 선정되어서 기분이 좋다. 경주에 더 많은 관광객들이 오고 외국인들도 찾아오면 좋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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