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륵스키(Modest Mussorgsky, 1839-1881)는 러시아 5인조뿐만 아니라 러시아 음악사상 가장 독창적인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독창적인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규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리스 고두노프’와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걸작을 남긴 무소륵스키는 술에 의존하다가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무소륵스키는 대대로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엄친아였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워 썩 잘 쳤지만 가문의 전통에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그는 군 복무 중 러시아 음악의 선구자인 글린카(Mikhail Glinka, 1804-1857) 의 후계자 다르고미시스키(Aleksandr Dargomyzhskii, 1813-1869)와 친분을 쌓게 된다. 또한 5인조의 리더 발라키레프에게 작곡을 배운다. 무소륵스키는 1858년 군 전역 후 음악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1862년 완전체가 된 5인조와의 교류도 심화되었다. 이즈음 음악에 눈을 떠가는 무소륵스키에게 큰 위기가 닥친다. 1865년(26세) 어머니의 죽음이다. 이때 슬픔과 충격을 이기고자 과음을 반복했고, 알코올 의존이 심해졌다. 그럼에도 1867년 완성한 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Night on Bald Mountain)’은 무소륵스키다움이 물씬 풍기는 수작이었다. 악마들이 술잔치를 벌이다 새벽 종소리와 함께 사라진다는 판타지를 곡에 담았다. 격렬한 리듬의 변화와 선명한 선율적 색채는 가히 압권이다. 이어진 걸작은 1869년 작곡된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다. 황권 찬탈의 야심을 품고 황태자 드미트리를 살해한 후 그의 망령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맞는 남자 보리스 고두노프의 이야기다. 이 오페라는 러시아 오페라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도 러시아어로 된 오페라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된다. 과거에는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쇼스타코비치가 대폭 개정한 수정판이 연주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작품원전을 연주하는 것이 대세가 되면서 무소륵스키 오리지널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도 무소륵스키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륵스키의 절친인 화가 하르트만(Alexandrovich Hartmann, 1834-1873)이 1873년 39세의 나이에 갑자기 죽자 이듬해 열린 유작 전시회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피아노곡 작품이다. 이 작품은 피아노곡보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이 관현악으로 편곡한 작품으로 더 자주 연주된다. 절친이 죽자 무소륵스키의 알코올 중독은 더 심해졌고, 다른 천재들처럼 너무나 젊은 나이인 42세(1881년)에 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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