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유치에 대한 경주, 인천, 제주의 치열한 유치전이 지난 7일 외교부 청사에서 최종 PT를 마침으로써 사실상 끝났다. 그러나 세 도시 어느 곳도 ‘아직은 유치전이 끝난 게 아니다’며 다시 치열한 물밑 로비에 돌입할 기세다. 그게 합당한 것인지, 최종 PT까지 치른 마당에 계속 경쟁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경주의 경우, APEC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 모습을 서울에서 곧잘 볼 수 있었다. 유치의 결정권자들과 이 유치전을 보도할 방송·언론들, 여론을 이끌 눈이 많은 서울, 수도권이다 보니 이곳에 대한 집중적인 홍보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청계천 광장을 비롯한 주요 인구 이동 지역의 대형 광고판과 홍보용 TV, 인천공항, 서울역을 비롯한 중요 교통 중심지의 광고판, 심지어 공항의 화물 운송 카트에도 유치를 홍보하는 경주시의 염원이 깃들어 있었다.
경주시민들에게 보여준 각오도 대단했다. 경주시 전체가 APEC 유치를 위한 홍보 구조물, 홍보 영상, 홍보 팸플릿, 현수막과 치장들이 넘쳐날 만큼 눈에 띄었다. 향우들과 관련된 행사에도 어김없이 APEC 유치를 호소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간곡했고 유치에 대한 강한 자신감도 두드러져 보였다.
아마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경쟁도시인 인천이나 제주 역시 경제적 시간적 투자는 물론 인맥을 연결하고 조금이라도 눈길을 끌 만한 방법들을 총동원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유치를 확신하고 유치 후의 성과도 비슷하게 강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세 도시 중 유치에 성공한 두 도시는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이렇게 되었을 때 탈락한 도시가 느낄 패배감이 얼마나 클 것이며 이처럼 오랜 기간, 물심 양면의 노력을 기울인 후유증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특히 우리는 지난해 11월 28일 있었던 ‘2030 엑스포’ 유치 실패의 쓰라린 경험을 안고 있어 실패한 경우의 파장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 당시 정부는 5500억원의 혈세를 쓰며 정제계 인사를 총동원해 야단법석 떨었고 유치에 대한 자신감을 지나치게 과장해 보도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큰 기대감을 주었다. 그러나 결과는 고작 29표의 저조한 성적을 올림으로써 국민들이 어이없는 충격을 받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 급격히 떨어졌다.
세 도시 중 두 곳은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 노력과 공을 더 들인 곳이 선택받아 개선가를 울리면 그 도시는 물론 행복하고 좋겠지만 나머지 두 도시는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대한민국이 겪었을 법한 충격에 빠질 것이다. 당연히 시민들의 혈세를 과도하게 쓴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유치전은 오히려 세 도시가 협의해 과하게 경쟁하는 것을 자제하고 시민들에게는 최대한 차분하게 홍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만큼 국내 어디에서 열려도 좋지만 기왕이면 우리 도시에서 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여유도 필요하다.
그런데 마치 APEC을 유치하면 세계인이 바로 몰려들 것처럼 선전하고 금방이라도 도시가 발전될 것처럼 떠벌리며 열 올리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설령 유치에 성공하더라도 어느날 갑자기 세계인이 몰려들 리도 없고 기대한 만큼의 발전을 보장할 수도 없다. 설혹 기대한 만큼 세계인이 몰리더라도 그것이 과연 시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인가도 따져 보아야 한다.
물론 경주 같은 관광도시는 유치전에 참가하는 자체로 그 유치전을 통한 대외 홍보 효과가 훨씬 클 것이란 점에서 어지간한 투자는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시민들이 품는 기대는 이같은 실익과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더욱 대외적으로는 혼신을 다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유도하는 이중작전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유치에 실패해도 대외적으로는 유치전을 통해 홍보 효과를 거두고 대내적으로는 아쉬움을 겪을망정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기운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