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의 달이라 함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을 기리는 달’을 의미한다. 6.25 전쟁이나 연평해전(6.29), 그 외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기리는 달이다. 그래서 정치계에서도 현충원 방문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다. 아줌마에게 군인은 어릴 적 위문 편지를 써야 했던 대상이다. 제주공항과 가까운 지역에 살았는데 무작정 가서 편지를 드렸다. 군인 아저씨가 무척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제주공항이 군사 공항이어서 군인 두 명이 입구에 항상 서 있었다. 좀 더 장성해서는 대학생이 되어 선배나 동기, 후배들이 하나둘 군대에 들어갔고 휴가 나오면 주구장창 술을 마시며 환영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군인을 생각하면 존경보다는 친근함이 강하다.
그런데 한 편의 영화를 통해 군인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챈스 일병의 귀환>. 2009년도에 개봉한 영화지만 아줌마는 몇 해 전에야 이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마이클 스트로블 중령이 2004년 이라크 전쟁에서 전사한 챈스 일병의 운구 임무를 맡으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영화다. 평소에 자신과 함께 근무하던 이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전사자 명단을 살피던 그는 자신과 고향이 같은 콜로라도 출신인 챈스 일병의 운구 임무를 자원하게 된다. 챈스 일병의 가족이 현재는 와이오밍 주에 살고 있기에 콜로라도 주에서 와이오밍 주까지 운구를 하게 되면서 느낀 것들을 마이클 스트로블 중령은 다이어리에 메모했고, 나중에는 ‘한 해병의 집을 향한 여정(A Marin’s Journey Home)’이란 열두 쪽의 수필로 발전했으며 이것이 영화 <챈스 일병의 귀환>의 밑바탕이 되었다. 아줌마는 이 영화를 통해, 군인에 대한 예우에 대해 처음으로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군인은 여름이면 홍수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겨울이면 폭설이 내린 지역에서 그들의 젊음과 열정으로, 언제나 가장 먼저 나타나 피해 주민들을 돕는다. 자연재해가 아니라도 그렇다. 농번기 때 일손이 부족한 지역에, 농활마저 불가능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나서는 것도 군인들이었다. 물론 시대가 변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군부대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는 횟수가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뉴스에 나오든 안 나오든, 그들은 언제나 국민 곁에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던 전시 상황에서는 물론이고 비전시 상황에서도 군인은 언제나 국민 곁에 있다. 채 상병 사건 처리 과정을 보며 아줌마는 마음이 아팠다. 사실 관계 확인이나 특검법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정작 군인에 대한 예우,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었다. 같은 엄마 입장에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엄마의 슬픔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들이 맡았던 임무가 적정했는지, 구명조끼 없이 물살이 센 강으로 들어가야 하는 군인의 상황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다. 단지 장성한 아들이 차가운 주검이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뿐이다. 그런 부모를 향해 우리는, 사회는 어땠는가? 정치 싸움의 수단으로 그들을 매도하거나 그들을 이용하려 하지 않았나? 우리는 가장 먼저 예우해야 했다.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에 대한 예우, 그 유가족에 대한 예우. 우리는 그것을 가장 우선시해야 했다. 그래서 혹여 그들을 매도하거나 이용하려는 자들을 온 사회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고, 그런 시도 자체를 아예 하지 못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매도하는 자와 이용하려는 자만이 가득한 것 같아, 아줌마는 이 점이 가장 슬프다. 우리를 대신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의 죽음이다. 어떤 과정에서 일어난 죽음이었든지, 일반 시민인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나라를 위해 젊음과 열정, 결국 생명까지 바친 그를 향해 진심으로 애도해야 한다. 이보다 중한 일이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