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호수’(1877), ‘잠자는 숲속의 미녀’(1889), ‘호두까기 인형’(1892)은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작품이다. 이처럼 차이콥스키는 우리나라에 발레 작곡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모차르트만큼이나 다재다능하다. 교향곡, 협주곡은 물론이고, 오페라도 잘 만들었다. 차이콥스키가 우리나라에서 다소 과소평가된 것은 그가 러시아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독일권의 주류 음악가가 아닌데다 과거 반공을 국시로 했던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이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한몫했다.
차이콥스키의 협주곡 양 대장은 피아노협주곡 1번(1874)과 바이올린협주곡(1877)이다. 두 곡 모두 오늘날 자주 연주된다. 호른의 장쾌한 소리에 피아노 건반의 강렬한 타격으로 시작되는 피협 1번은 명곡이다. 러시아가 도핑 스캔들로 올림픽 출전이 불가하게 되자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러시아팀의 국가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편, 차이콥스키의 유일한 바협은 세계 4대 바이올린협주곡으로 꼽힐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대결하듯 넘실넘실 주고받는 연주는 협주곡의 어원(concertare: 협력하며 경쟁하다)을 잘 구현하고 있다.
차이콥스키는 교향곡을 6곡 작곡했다. 후기교향곡 4, 5 ,6번이 유명한데 이 중에서 그가 사망한 해에 작곡한 6번 비창이 오늘날 무대에 자주 오른다. 그는 비창 초연 후 불과 9일 만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결국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 된 셈이다. 비창은 클래식에 익숙한 유럽 관객들도 3악장이 끝날 때 박수 치는 실수를 종종 범하는 곡이다. 3악장 마지막 부분이 4악장 종결부보다 더 강렬하게 끝나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는 기악곡의 대가였기에 발레 음악 역시 훌륭하다. 발레 음악은 원래 이류 음악가들의 영역이었다. 살펴보면 일류 음악가가 쓴 발레 음악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차이콥스키가 발레 음악을 음악답게 만든 최초의 작곡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그의 3대 발레곡이 처음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다. 프티파(Marius Petipa, 1819-1910)와 같은 거장 안무가들을 만나면서 그의 발레곡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차이콥스키가 무려 10개의 오페라를 작곡한 러시아 오페라의 거장이었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의 오페라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을 뽑으라면 단연 ‘예브게니 오네긴(Eugene Onegin)’(1879)이다. 푸시킨(Alexander Pushkin, 1799-1837)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오페라에서 여주인공 타티아나는 예브게니를 연모하지만 거절당한다. 하지만 나중에 상황이 역전되어 외려 예브게니가 후회하며 (유부녀가 된) 타티아나에게 구애한다.
차이콥스키는 예브게니에게 자신을 투영했고, 자신을 열렬히 사랑했던 밀류코바를 타티아나로 여겼다. 그래서 밀류코바와 결혼한 것이다. 타티아나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밀류코바는 차이콥스키가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까지 하지 않았던가? 차이콥스키의 사인은 콜레라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동성애에 기인한 음독자살설 또한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