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대한 수요와 소비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장소(place)’라는 것이 과거 단순한 목적지와 기능이 중요시되었다면, 최근에는 공간 자체의 특색과 아름다움, 매력이 중요시되고 있다. 상점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 외에 그 공간이 가진 매력이 장소 방문의 큰 요인이 된 것이다. 공간을 소비한다는 것은 해당 장소가 제공하는 다양한 시각적 볼거리, 문화, 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의 유명 백화점과 쇼핑센터들도 상업 활동 외에 전시관, 예술공연 등을 열고 있고, 건축에서도 특색있는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여 소비자들에게 멋지고 매력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온라인 거래가 일상화되어 굳이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가 줄어든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지역 상가 쇠퇴가 더욱더 심각해지고 있어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상가 활성화 대책들이 시행되기도 했다. 쇠퇴하는 상가를 활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그 공간을 매력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 상가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으로 ‘~길’ 전략이 여러 곳에서 추진되고 있는데, 황리단길과 같은 번화가 사례를 바탕으로 쇠퇴한 상가를 활력 있게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경주 중심상가 지역도 거리 이름을 ‘금리단길’로 명명하고, 새 단장을 통해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상가를 활성화하는 데는 홍보, 입점 브랜드, 역사성, 화제성 등 여러 분야에서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중 필자는 이번 기고에서 도시설계의 관점에서 중심상가 가로를 매력적인 공간으로 조성하는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첫째, 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거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길과 방문자들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 이것은 사람들이 길을 그냥 지나가는 통로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보행하면서 주변 상점과 음식점들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구경하기도 하고, 그 길 자체를 즐기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길 자체만으로도 매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냥 도로만 ‘OO길’이라 지칭하고, 바닥을 새로 포장하고 가로등과 가로 시설물들만 가꾼다고 해서 그 길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그 길을 잘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길을 장소로써 활용하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서양처럼 노천카페가 어렵다면 벤치와 같이 쉬어갈 수 있는 소품들이 가로에 활력을 줄 수 있다. 둘째, 골목 안을 파고들어야 한다. 서울 인사동길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더욱 매력적인 찻집과 갤러리들을 만나볼 수 있다.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황리단길도 주된 길에서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더욱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들을 즐길 수 있다. 이미 중심상가 블록 내부에는 게스트하우스, 음식점,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사람들은 넓고 높은 것에는 위압감과 휑한 감정을 느끼지만, 골목에서는 아늑함을 느끼게 된다. 미로와 같은 골목과 그 안의 보석 같은 장소들은 방문자들에게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셋째, 공간을 과감하게 비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심상가 지역에 공실이 늘어나면서 비워진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는 주로 주차장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주차가 편리한 것도 필요하지만, 황리단길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곳이 주차나 차량 이용 환경이 좋아서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님을 생각해야 한다. 주요 가로 안의 비워진 건물은 과감히 정리하여 공개공지로 제공하여 다양한 활동이 발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을지로의 한 골목은 밤이 되면 맥주 골목으로 변하여 젊은이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만남의 장소를 제공할 수도 있고 공연, 전시, 판매 등의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 생겨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유념해야 할 것은 전국의 유명 거리들은 대부분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런 곳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한 과한 노력은 대부분 실패했다. 다만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자생적인 활력이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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