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순,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여행업을 오래해 온 나로서는 이번이 세 번째 이탈리아 방문이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방문한 즐거움이 이전보다 훨씬 컸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이 베네치아다. 베네치아는 자연적인 섬과 인공적으로 보강된 섬이 독특한 지리적 환경을 만들었고 그 속에 독보적인 유적을 보존해 오다 보니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그만큼 오래된 성당, 명소, 문화 예술이 넘쳐나는 곳이다.
전반적인 통계를 보면 베네치아는 연간 약 80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다. 이 숫자는 매우 정확한 것이, 섬으로 이루어져 열차나 배로 드나드는 숫자가 쉽게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베네치아 주요 유적지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골목이나 수로, 운하, 광장 등이 사람들로 붐빈다. 한때 20만 가깝던 거주 인구가 줄어 지금은 5만 명 수준인 도시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넘쳐나는 것은 경탄할 만하다. 유적 보전에 대한 엄청난 통제와 그에 따른 불편, 관광객들로 인한 스트레스로 점점 거주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관광객은 꾸준히 늘어나 내가 베네치아 있을 무렵 향후 탐방 인원을 제한하겠다는 정책이 고려 중이라는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소식이 과장되지 않다는 것이 귀국한 바로 다음 날 증명되었다. 4월 25일자부터 베네치아에 당일로 들어오는 방문객에게는 5유로(약 7000원)씩 입장료를 받는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베네치아가 디즈니랜드라도 되느냐며 조롱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들끓는 인파를 본 사람이라면 이런 조치가 왜 일어났는지 충분히 수긍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베네치아 주민들이 오죽 답답하고 성가셨으면 이렇게 입장료를 받을까 싶은 것이다.
이런 상념은 자연스럽게 경주와 연결된다. 경주는 연간 4750만명이 방문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황리단길과 일부 축제 시기 등을 제외하면 이 숫자가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중요한 유적지의 단위 면적이 베네치아에 비해 월등히 떨어지고 인구는 월등히 많은데도 베네치아의 인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주시 발표에 따르면 황리단길에는 하루 평균 3만5000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정도 숫자가 경주방문 관광객의 숫자일 것이다. 즉 한해 1200만에서 1300만정도가 경주를 찾는다고 보면 합당할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관광객이 많은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베네치아 인구가 줄어드는 결정적 원인은 관광으로 인한 투어리피케이션의 심화다. 거주민들은 늘어나는 관광객으로 인해 소란스럽고 사생활이 침해당하고 환경이 지저분해지는 것에 진저리 친다는 것이다. 관광객이 늘어나는 만큼 그와 비례해 소득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경주처럼 대부분 하루만에 돌아가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이고 관광지의 상대적 고물가로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 현상도 심해졌다. 즉, 관광객이 늘어나는 긍정적 효과보다 그로 인한 부정적 폐단이 커지다 보니 관광정책의 근본적인 시정이 필요해진 것이고 그 결과 당일치기 관광객에게는 5유로라는 입장료까지 받게 된 것이다.
경주 역시 4750만이건 그 이하건 반드시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 보아야 한다. 관광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주는 지금의 관광객만으로도 주말이나 관광시즌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고물가로 인한 시민 경제침체, 사생활 고통, 유적지 규제로 인한 불편, 유적 보존으로 인한 사유재산 침해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있다. 관광객이 많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베네치아처럼 대부분 하루만에 돌아가는 관광객들이고 시민 경제에도 별 영향을 못 미치니 시민들 입장에서는 관광객이 더 이상 반갑지 않다는 것이다. 관광객이 늘어난 것을 자랑하는 시의 과대한 홍보는 오히려 시민들의 삶을 무시한 공허한 실적주의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베네치아는 여러 면에서 경주가 벤치마킹할 만한 도시다. 누구를 위한 문화재 정책인지, 누구를 위한 관광정책인지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개선해야 한다. 무턱대고 관광객을 늘이는 정책을 고쳐서 관광은 주민들을 우선 고려한 정책으로, 유적보존은 국민의 명예와 미래 세대를 위한 정책으로 양립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베네치아는 이미 오래 전에 그것에 실패한 도시이기에 입장료라는 강경책까지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