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국을 다녀오다                                                         권규미 북쪽의 북쪽으로 흰 말을 타고 갔다 바람 강 얼음산을 넘고 또 넘어서 찔레꽃 우거진 뜨락 왕의 잠에 닿았다 만발한 묵언뿐인 오래된 꽃의 나라 원래 가시나무의 먼 혈족이었던 나는 뚝뚝 진 그 묵언들을 치마폭에 거두었다 능원은 아득하고 때때로 반짝였으나 말과 글과 풍속이 서로 멀어진 탓에 면벽한 물방울들 총총 세다 돌아왔다 민족과 자신의 정체성 찾기로서의 왕국 여행 조문국은 경상북도 의성군 지역에 있었던 삼한 시대 초기 국가다. 그런데 그곳을 찾아가면서 시인은 “북쪽의 북쪽으로/흰 말을 타고 갔다”고 현실과 환상이 적절하게 조응되는 구절로 묘사한다, ‘북쪽의 북쪽’이라니! 그것은 비단 조문국뿐만 아니라, 우리의 잃어버린 땅이 다 북쪽에 있다는 안타까움과, 그 아스라한 시간들에 대한 핏줄 속 그리움을 내포하고 있는 구절이다. 이는 일찍이 30년대에 이용악이 “시름 많은 북쪽 하늘”(「북쪽」)이라고 쓴 맥락과 일치하면서도 이용악의 현실공간을 넘어선다. 그러니 자동차보다는 ‘흰말’이라는 말이 훨씬 더 유효하다. 흰말은 “바람 강 얼음산 넘고 또 넘”어 “찔레꽃 우거진 뜨락”에 도착하지만 시인은 거기서도 왕국의 실체를 보지 못한다. “왕의 잠”에 겨우 닿을 뿐이다. 왕국은 쉽사리 시인에게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조문국은 이제 시인 앞에 “만발한 묵언뿐인 오래된 꽃의 나라”로만 존재한다. 이 아픈 그리움, 그러나 도달할 수 없는 안타까움 앞에서 시인은 식물성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먼 역사로 밀어 틈입하는 시도를 감행한다. “원래 가시나무의 먼 혈족이었던 나는”이라는 구절은 찔레꽃에서 촉발된 것이기도 하지만, 시원을 향한 자기 모험이다. 말하자면 인간과 식물이 한 통속을 이루고 있었던 고대적 조화의 시간에 대한 희구랄까? 그렇다면 가시나무는 현실적으로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가? 다정하지 못하고 자폐적인 성향을 지닌 자신의 기질에 대한 겸손의 표현이다. 이어지는 “뚝뚝 진 그 묵언들을 치마폭에 거두었다”는 구절은 왕국의 편린들을 따 담으려는 안쓰러운 안간힘과, 시인이라는 존재의 기능을 말해준다. 그렇다. “능원은 아득하고 때때로 반짝”이면서 한 번씩 은밀히 자신의 비밀을 풀어내 주고 있지만, “말과 글과 풍속이 서로 멀”다. 시인 백석은 이를 두고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북방에서」)고 했지만, 시인은 민족의 긍지와 무량한 세월이 덧없는 시간 속에 흘러가 버리고 만 상실감을 이렇듯 여실히 표현한다. 그리하여 겨우 왕릉(王陵) 벽에 맺힌 물방울만 총총 세다 돌아올 뿐이다. 결국 시인은 조문국의 사라진 역사를 통해 우리의 뿌리 뽑힌 삶으로부터 회귀하여 자랑스런 당대의 시간의 결을 만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권규미는 치매에 걸린 엄마를 문병하러 가서 “엄마를 꿔간 노파는 동생과 나를 모른다”(「우리들의 노파」)고 아이러니와 아픔을 절절히 그려내는가 하면, 아내를 간병하던 칠십대 남편이 두 손을 잡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을 “허공의 난간을 딛고 물의 계단에 올랐다”(「활짝, 피다」)고 죽음의 순간마저 상승의 미학으로 돋구어낼 줄 아는 우리 시단의 촉망받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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