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
성욱현
몸에 맞추어 옷을 만들던 시절은 지났다
​우리는 만들어진 옷속에 몸을 끼워넣는다
입지도 않는 옷을 산 걸 후회했고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옷이 쏟아지다니, 이게 뭐니
창고에 갇힌 미싱은 소리 없이 울면서 혼자 돌아갔겠다
할머니가 늙어가는 소리처럼
소리 없이 할머니를 입는다
미싱을 배울 때가 좋았어
할머니는 사라질 것만 같은 쵸크 선을 따라서
엉킨 실을 풀며 매듭을 새기며
몸에 맞는 옷을 만들었겠다
미끈하고 곧게 선 재봉틀 위를 걸어가던 할머니는
두 발을 가지런히 하고 누워 계신다
열여덟 살 소녀가 누운 나무 관, 삐걱거린다
새 옷에서는 차가운 냄새가 난다
몸은 언제나 헌것이라 옷보다 따뜻한 것일까
치수를 재어
나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며
할머니는 오래된 치마처럼
낡아가며, 얇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
나를 한 벌의 옷으로 만들었다는 걸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거실 한쪽으로 미싱을 옮긴다
미싱 가마에 기름칠을 하던 할머니도
오래도록 팔꿈치가 접혀 있었다
여기 앉아보세요
눈발이 창에 드문드문
박음질을 하고 있어요
물화와 인격이 분리된 시절에 읽는 옷 이야기
참 좋은 서정시를 만났다. 옷은 숨을 쉬는 생명이다. 그러기에 옷은 일일이 사람의 몸에 맞춰야 한다는 걸 “만들어진 옷속에 몸을 끼워넣는” 이 부자연스런 시대에 우리에게 깨우치는 시다. 스토리의 바탕에는 미싱으로 시인을 키워냈던, 이제눈 “열여덟 살 소녀”적 모습으로 관 속에 누워계신 할머니가 있다.
시인은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옷을 입는 상황을 “할머니가 늙어가는 소리처럼/소리 없이 할머니를 입는다”고 표현한다. 옷에는 할머니의 생이 녹아 있다는 말이다. 그렇듯 할머니는 “미끈하고 곧게 선 재봉틀 위를 걸어가”듯 신나는 긍지로 삶을 사셨다.
“엉킨 실을 풀며 매듭을 새기며 몸에 맞”추는 일이 옷의 일만일까? 할머니, 이 땅의 모성들은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일 하나에도 “치수를 재어” 몸에 맞추는 정성을 들이신다. 그러는 동안 당신은 “오래된 치마처럼 낡아가며, 얇아”져 관 속에 누워 계신다. 화자가 “​할머니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나를 한 벌의 옷”, 인격으로 만들었다는 걸 알고는 울컥해짐은 물론이다. 이 시의 의미가 확장되는 지점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옷”을 쏟아내는, 물화와 인간이 분리된 세상을 겪으신 당신의 마지막을 누가 위로해주지? 이런 생각을 하늘은 아는지 “창에 드문드문 박음질을 하”는 눈발! 서정시가 갖추어야 할 감동과 깊이가 어우러진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