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은 평소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었다”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지난해 내가 10년째 근무하던 진주의 공공기관 서울 출장길, 남산공원에서 만난 김구 선생 동상이 인상 깊었다. 당시 나는 한국을 떠나 가족이 거주하는 아일랜드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아일랜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한 끝에 관심 분야인 서예와 아내가 제안한 한복 입혀보기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다행히 이 계획들이 이루어져 서예는 지난해 초여름 슬라이고 갈보리 초교 강의에 이어 이번에는 아일랜드 최고의 상아탑이라 할 트리니티(Trinity) 대학에서 진행했다. 한인회 행사에서 만난 이 대학 한국학 동아리의 도움을 얻어 동아리 행사로 진행했다. 진주에서 여러 벌의 한복을 비롯해 벼루며 화선지, 먹과 교재 등을 무겁게 들고 왔었는데 지난해 초등학교 행사 이후 단 한 번의 소개할 기회도 가져보지 못했던 기다림의 시간이 떠올랐다. 한국의 초보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서예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강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불안해지고 걱정이 앞섰다. 걱정과 근심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강의 3일 전부터는 먹을 갈면서 마음 한켠에 이는 걱정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아일랜드는 비가 잦고 습도가 높아 서예 하기에 좋은 기후는 아닌 데, 강의를 진행한 날(1월 30일)은 마침 날씨가 맑아 다행이었다. 우선 준비해간 문방사우를 테이블당 2개씩 준비하고 한글과 한문, 영문으로 쓰여진 체본(글을 써내려 가기 위한 샘플)을 강의실 이곳저곳에 붙였다. 세종대왕 한글창제, 입춘대길 건양다경, 불국사 석굴암, 나랏말싸미 중국에 달아..., 이니스프리의 호도 Lake Isle of Innisfree 등을 써 붙이고 필자가 경남도, 울산광역시 등에 출품하여 입선한 서예 족자들도 걸어두니 서예실 분위기가 났다. 놀랍게도 학생들의 호기심과 열의, 몰입도가 대단했다. 사비를 털어 기차를 타고 모든 비용을 지불하면서 마련한 자리인 것을 이들도 알아서였을까? 각자 마지막 화선지 위에 쓴 글을 가져가면서 많은 고마움도 표했다. 한가지 흠이라면 미리 참가 신청하지 않은 중국 학생이 와, 왜 한국인이 자신들의 문자인 한문을 외국인 학생들에게 가르치냐며 따진 것이었다. 중국인들의 문화에 대한 지나친 우월감 내지는 문화적 국수주의의 발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행히 행사를 주최한 한국학 동아리 학생이 잘 설명해 그 학생도 이해하고 행사에 참여했고 마칠 때 ‘중국과 한국의 영원한 발전을 위하여’라고 간체자로 써놓고 자리를 떴다. 열흘 뒤인 한국의 설 연휴 첫날(2월 9일)은 한복을 입어 보는 시간이었다. 한복에 대한 관심이 많아 한국학 동아리 학생 200여 명 중 희망자 추점을 통해 20명을 선발했다. 대학 내 해밀턴(Hamilton) 빌딩 2층, 글로벌 룸에서 진행된 행사에서 한복을 입어본 학생들의 만족감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초 진주에서 당근마켓을 통해 한복 30여벌을 구매, 아일랜드로 향하며 아내와 함께 특별이송 작전을 펼쳤던 한복들이 빛을 발하기까지 반년 가까이 기다려야만 했다. 참가한 한 여학생은 자신이 지난 수년간 한국동아리 활동하면서 가져본 이벤트 중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고 서예까지 함께 체험한 한 남학생은 한복을 가리켜 “자신이 평생 입어 본 어떤 옷보다 마음에 든다”며 행사가 끝날 순간까지 한복을 벗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 자리가 마련되기까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한국학 동아리 회장인 곽수경 학생(Trinity대약학과 4년)의 헌신과 한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이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 아울러 동아리 학생들의 열의, 싼 가격에 한복을 넘겨준 진주시민들도 고맙다. 그런 한편 필자의 가족이 10여 년간 살며 느낀 아일랜드에 대한 고마움도 이 행사의 동력이었다. 이쯤 되면 ‘아일랜드의 한국문화 전령사’라는 호칭은 아니라도 아일랜드 최고의 대학에서 ‘한국문화’의 멋을 알림으로써 문화의 저력을 일깨우신 김구 선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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