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3일 경주중·고서울동창회 송년회에서 오랜만에 이색적인 행사가 펼쳐졌다. 올해 80세 맞은 동문들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짧은 축하 시간을 가진 것이다. 10여 년 전 70세 생일맞은 동문들에게 축하하던 행사가 사라진 이후 부활한 행사다. 단순하게 80세를 맞았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이분들 이전 세대들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루어 낸 업적이 말할 수 없이 크다. 지금의 80세부터 90대 어름이라면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초반의 세대들이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 절정부터 6·25 전쟁통에서 태어나 나라 잃은 서러움과 절대빈곤의 나라에서 자라며 갖은 고생 다한 끝에 산업의 역군으로, 독일 간호사 광부로, 중동사막에서 외화획득의 선봉으로, 월남에서는 목숨을 건 역전의 용사로 살며 대한민국을 잘 살게 하는 초석을 다진 세대들이다. 그런가 하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동족상잔을 거치면서 분단된 국가로 인해 500만 가까운 이산가족의 주인공으로 산 세대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마지막 슬픔이라 불러도 모자람 없을 정도의 시기를 지나 어느 나라보다 잘 살고 눈부신 문명을 이룬 최고의 전성기를 사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삶을 절묘하게 그려낸 영화가 ‘국제시장(2014/윤제균 감독)’이다. 1950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진행된 흥남철수를 기점으로 시작된 이 영화는 이후 2014년까지의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극명하게 그려낸다. 이야기의 주무대는 부산이다. 부산이 주는 의미는 6·25에서 마지막 남은 보루라는 의미와 국군과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최후의 보루이자 반전의 의미를 가진 도시다. 그중에서도 ‘국제시장’은 전쟁을 피해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모인 사람들의 애환이 한곳에 농축되었고 이름 그대로 국제적 물건들이 유통되던 극명한 삶의 현장이다. 주인공 덕수는 열두어 살 남짓의 어린이다. 대체로 1930년대 후반쯤에 태어났을까? 흥남철수 때 뜻밖의 사고로 아버지와 여동생과 헤어진 이후 부산에서 엄마를 도우며 두 동생을 책임진 어린 가장이다. 덕수에게는 헤어지면서 남긴 아버지의 목소리가 평생동안 뼛속 깊숙이 남아있다. “내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네가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 부두 잡역부를 쉴 새 없이 하고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기 위해 뼈가 부서지도록 일한다. 자연히 선장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은 가차 없이 무너지고 사라진다. 돈 벌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음을 극복하기 위해 광부로 독일로 가고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에서 산업근로자로 자청한다. 이 와중에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몇 차례나 겪는다. 이런 만큼 이 영화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무지무지 슬프고 힘겨운 영화다. 다행히 윤제균 감독은 이 숨막히는 슬픔의 중간에 배꼽 빠지는 웃음을 숨겨두고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우리 민족사의 최대 통한이자 비극인 ‘이산가족’을 남겨 놓았다. 이 가혹한 장치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전쟁의 참상은 50년 60년이 지나도 쉬 가라앉지 않을 만큼 참혹한 것이며 그게 꼭 전쟁을 겪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쉽게 가르쳐 준다. 이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린 사람이라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얼마나 깊은 휴유증을 남기는지를 몸소 체험한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그야말로 지금의 80대 이상 노년 세대들이 겪은 살아있는 역사다. 우리의 대선배님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세계 최악의 빈곤국가를 중진국으로 선진국으로 이끈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서슴없이 자신을 희생해 가족들을 지켜낸 위대한 전사들이다. 그들의 주름살 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제 나이가 꽉 차서 늙고 힘없어지니 영화에서처럼 자식들은 그들을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돌보기를 꺼리고 사회는 은연중에 그들을 짐으로 취급한다. 국제시장은 어쩌면 이 숭고한 세대를 조명함으로써 우리가 잊어버린 고마움을 대신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통해 그들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고마움을 가질 수 있다면 당신들을 보는 우리의 눈길이 훨씬 다정스럽게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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