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초능력을 다룬 만화나 애니매이션, 드라마와 영화는 얼핏 미국이나 일본, 중국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미국의 경우는 대체로 세 가지 부류다. 슈퍼맨처럼 외계에서 오거나 스파이더맨과 헐크처럼 과학 실험이나 사고를 통해서 혹은 토르처럼 고대로부터 숨겨져 온 신화의 주인공이 부활하는 것 등이다. 일본의 경우 초능력자들은 일본의 정령문화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동네마다 몇 개씩 되는 일본의 정령문화는 다양한 이야기를 꾸미는 원천적인 소재다. 대표적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모노노케 히메, 음양사 등에서 보이는 초능력자들이 이런 류이다. 중국의 경우 초능력자들은 무협지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랜 수련을 통해 가공할 무공을 익히게 되면 힘도 세지고 빨라지고 심지어 날아다니는 경지에 이른다.
최근 들어서 ‘한국형 슈퍼히어로’를 표방한 드라마나 영화들이 만들어지며 신선한 재미를 주고 있다. 한국형 초능력자들은 주로 설화나 전설을 통해 등장하거나 고대 소설 등에서 도를 닦아서 탄생한다. 구미호는 천년 묵은 여우가 재탄생한 초능력자이고 홍길동과 전우치, 박씨부인은 도를 닦아서 초능력을 얻는다. 이들은 바람을 부르고 비를 오게 하는 재주에 축지법과 변신술 등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런 초능력은 ‘도술’ 정도의 의미로만 제한될 뿐 허리우드 식의 구체적 초능력으로 세분화되지는 않았고 지나치게 자주 영화나 TV로 제작되며 식상해졌다.
이런 한국형 초능력 세상이 요즘 들어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슈퍼히어로의 전형이 다각도로 발전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도 덩달아 급상승하고 있다. 이를테면 ‘도깨비’는 고대 장군의 원혼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경우다. 절륜한 무공과 혼령화 되면서 터득한 초능력으로 순간이동과 염동력 등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별에서 온 그대’는 외계에서 지구로 온 외계인이 지구인과 동화하면서 드러내는 초능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도봉구의 초능력자 도봉순, 강남구의 힘쎈 여자 강남순은 집안 여성들에게만 전해지는 마법 같은 힘을 다루었다. 연약하게 보이는 도봉순과 강남순은 수십명의 악당들을 맨손으로 순식간에 제압한다.
그러나 이렇게 단독으로 움직이는 초능력자들은 홍길동과 전우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역량을 중심으로 악당을 물리치거나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단독성에 과감하게 벗어난 것이 슈퍼히어로들의 단체 등장이다. 경이로운 소문은 뜻밖에 죽은 정의로운 사람들을 ‘카운터’라는 이름으로 되살리고 초능력을 심어준 경우다. 이들은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강력한 힘과 빠른 속도, 염동력까지 갖추며 사회를 어지럽히고 악행을 일삼는 악귀들을 소환해 지옥으로 보낸다. 악귀 역시 사람의 혼령을 먹어치울수록 카운터들 못지않은 강한 힘을 얻게 되므로 이들 카운터와 악귀들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최근 방영된 무빙은 사회 속에 은밀히 숨어 있는 초능력자들의 활약을 그린다. 이들의 초능력은 제각각 개성이 있다. 힘이 엄청나게 세거나 전기를 일으킬 수 있다거나 소리를 잘 듣고 귀가 밝다거나 하늘을 날 수 있다거나 상처가 급속히 낫는 탁월한 재생력을 가졌거나 하는 등이다. 이들은 CIA가 양성한 초능력자와 대결하거나 북한에서 양성한 초능력자들과 싸우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심지어 이들의 초능력은 자녀들에게 대물림 되어 새로운 이야기의 탄생을 점치게도 한다. 이런 한국형 슈퍼 히어로들의 드라마는 OTT방송을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바야흐로 K-콘텐츠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들 대부분이 웹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만화를 바탕으로 한 헐리우드와 애니매이션 천국을 표방한 일본과 또 다른 비교점이다. 이제 절대다수 대중은 스마트 폰에 의해 콘텐츠를 선택하는 세대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웹툰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게 된 것은 급속한 스마트 폰 배급에 맞추어 스마트 폰 화면에 맞춘 웹툰을 어느 나라보다 빨리 정형화 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웹툰에 익숙해진 세계의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한국형 슈퍼히어로들과 친숙해졌고 그 결과로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들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 세계 시장의 활짝 열린 문을 맛본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야흐로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전성시대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