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별칭에 어울릴 만큼 곳곳이 유적과 유물로 이루어진 도시다.
특히 신라의 수도로서 당시의 도시 규모는 현대의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넓어서 지금도 도처에서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나 유물들의 나오고 있다. 유적이나 유물이 나오면 당연히 그 일대가 발굴로 이어진다.
땅이 얼어붙은 한겨울을 제외하면 경주는 1년 내내 발굴이 진행되는 곳이다. 그만큼 발굴에 의한 유적과 유물의 수도 많고 그와 관련한 이야기도 많다. 당연히 발굴에 참여한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늘려 있다.
그런 발굴이 일상화된 경주사람들에게 꼭 맞는 맞춤형 영화가 더 디그(The Dig / 2021 시몬 스톤 감독)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9년, 당시에는 영국 땅이던 아일랜드의 서퍽이란 곳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에는 자신의 사유지인 한 언덕을 눈여겨본 ‘이디스 프리티’와 비록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할아버지 대부터 전해온 발굴 실력을 전수받은 발굴전문가 ‘바질 브라운’이 등장한다. 이들은 그 사유지 언덕이 바이킹 이전인 앵글로 색슨 시대의 유적이라 확신하고 발굴을 시작한다. 그러나 역사에는 언제나 냉담한 방관자들이 있듯 당연히 영국 박물관 당국이나 고고학 관련 학자 누구도 이 언덕에 일말의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독자들이 예상하듯 이곳에서 앵글로 색슨 시대의 배로 추정되는 목선이 나온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뒤늦게 박물관 당국이 뛰어들고 이 발굴을 시작했던 바질은 정통 학위 소유자가 아니라는 차원에서 발굴에서 배제된 채 허드렛일만 맡게 된다. 자신의 손으로 발굴을 완성해 발굴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바질은 굴욕감을 이기지 못한 채 발굴 현장을 떠난다. 과연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경주의 역사적인 인물이 있다. 경주의 향토 사학자로 서봉총 발굴부터 시작해 경주의 여러 고분 발굴에 오래 참가한 석당(石堂) 최남주 선생(1905~1980)이다. 특히 최남주 선생은 임신서기석, 남산신성비, 황복사지 발굴 등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인 박물관장 등이 이 사실을 숨긴 채 선생에 대한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선생은 더군다나 해방 후에도 새로운 박물관 체제가 만들어지면서 끝내 역사적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셨다.
다만 선생의 공을 익히 알아 온 학자들과 경주의 향토 사학자, 시민들의 노력으로 일부나마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다 2006년 9월 2일 한국박물관협회에서 선생의 공헌을 인정해 김유신 장군 묘 아래 석당공원을 만들고 기념비를 제작해 세움으로써 선생의 공로가 우리나라 발굴의 귀감으로 알려지게 됐다.
특히 최남주 선생과 동시대 경주에서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사이토 타다시 선생이 한국고분발굴 100주년 기념식차 한국으로 와 최남주 선생에 대해 언급했고 석당공원을 방문해 선생과의 교분을 추억한 것으로 알려지며 선생의 역할이 다시 한번 조명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석당 선생의 유지는 선생의 후대에 이어져 큰 아들인 최정필 세종대 명예교수가 역사학자 박물관학계의 권위자로 활약하고 다른 아들들 역시 우리 역사와 경주를 아끼는 중요 인사로 활동하고 있다. 선생의 공이 아직까지 튼튼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바질은 자신이 시작한 발굴의 가치를 알고 다시 돌아와 끝까지 발굴에 헌신하였고 프리티 여사는 이때 발굴된 모든 유물들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러나 끝내 최초 발굴자 바질 브라운의 공헌은 당시 기록에서 빠졌다가 뒤에 양심 있는 학자들의 증언에 의해 지금은 최초 발굴자로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더 디그’에는 발굴에 임하는 바질 브라운의 결연한 외침이 나온다.
“발굴은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한 일이다”
그때 영국의 비젤 이나 경주의 석당 선생은 얼추 비슷한 시대를 산 사람들로 보인다. 두 발굴자의 공통점은 현장에 대해 해박하고 발굴 경험이 많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고학에 대해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학위가 없었다는 것이다. 때로는 알량한 학위보다 현장에서 배운 치밀한 실력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시대를 떠나 양쪽에서 발굴에 혼신을 쏟았을 두 전문가의 탁월함을 기리며 박수 보낸다. 그분들이 밝혀낸 미래의 역사에 우리가 서 있다. 다시 꽃 피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