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단일민족이라는 신앙 같은 상식을 교육하고 그런 양 믿고 살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인종학적으로 남방계와 북방계로 나뉘어 그 생김이나 특징이 분명히 다르고 크고 작은 전쟁의 결과로 다양한 인종의 교류가 생겼을 것이 뻔한데도 억지로 한 민족인 것처럼 포장해왔을 뿐이다. 그게 국가 간 교류가 적고 개방되지 않은 나라라면 별 일 아니겠지만 다수의 국가가 어울려 살거나 이 민족 간 교류가 많아지면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인종의 문제를 안게 된 것은 6.25 이후 UN군의 진주, 특히 미군과의 교류로 인한 문제부터일 것이다. 순전히 피부색과 머리카락 등 눈에 띄는 다름이 있을 뿐이지만 별종이나 저급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심지어 더러운 사람으로 취급한 다수의 배타적 성향이 곳곳에서 2세를 괴롭히고 사회문제로 비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는 필리핀과 베트남 등 결혼으로 인해 늘어난 다문화 가정, 다양한 국가에서 취업으로 들어온 해외노동자들이 늘면서 일어난 사회적 편견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는 미국이나 아프리카 등에서 일어나는 극한적인 인종차별을 없었지만 단순히 외모가 다르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량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성실한 사람들을 홀대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한때 아메리칸 드림을 외치며 모두가 꿈의 나라로 알고 있었던 미국은 실상 지독한 인종차별 국가다. 백인은 흑인을 ‘니그로’라는 말로 차별하고 그 흑인과 백인은 다시 동양인을 ‘바나나’라 비하하며 차별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지금도 겉으로는 평화롭게 위장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걸핏하면 인종으로 인한 폭력사고가 일어난다. 숱한 인권단체와 양심적 지성들이 이런 문제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오랜 기간 활동해온 덕분에 상당부분 인종차별이 완화되었지만 언제 이 문제가 불거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인종차별 백인단체로 KKK단을 꼽는다. KKK는 Ku Klux Klan의 합성어로 이들은 백인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해 흰색 천으로 온몸을 감싸 자신들을 드러낸다. 미국 역사에서 KKK단이 다른 인종에게 저지른 범죄와 폐해는 상상을 불허하며 지금도 그 점조직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악랄한 KKK단 지부장이 백인 자녀들과 흑인 자녀들의 학교가 통합되는 회의의 공동의장을 맡았으니 그 결과가 심히 괴로울 것은 뻔하다. 더구나 그 악명높은 KKK지부장에 맞서는 상대는 흑인의 권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소문난 열혈 여성 운동가다. 피를 튀기는 접전이 예상된다. 영화 ‘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The best of enemies/2019 로빈 바슬 감독)’는 1970년대 화재로 학교 기능이 마비된 흑인 학교를 백인 학교와 합치는 안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2주간의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다. 굳이 세부적인 내용을 접어두더라도 이 첨예한 일이 일으킬 갈등은 보지 않아도 알 만하다.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다룬 만큼 그 회의상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상세한 전개와 놀라운 반전은 흥미롭기 이를 데 없다. 여기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양자가 모두 자신들의 신념이 자녀들에게 합리적이고 올바르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KKK단 리더는 자녀들이 흑인 아이들에게 받을 피해를 방지하고 올바른 교육을 위해 흑인 아이들과의 통합을 반드시 막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혼신을 다한다. 그러면서 흑인 대표자에게 당신들과 우리는 똑같은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대답하는 흑인 대변자의 말이 가슴을 후빈다. “흑인들은 당신들이 겪지 않은 고통을 겪으면서 자라납니다. 백인들은 아무 이유없이 애들에게 침을 뱉고 백인에게 길을 안 비키면 얻어맞기 일쑤죠. 앉고 싶은 자리에도 마음대로 앉질 못해요. 가고싶은 곳이나 학교도요. 이런 고통을 매일 겪는데도 우리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지요. 그러면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집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사람을 어떤 이유로도 홀대하거나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언제건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이 영화를 추천하는 마음은 다소 무겁다. 인종간이나 피부색 간의 일이 아니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 대상이 비록 적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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