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사람들, 특히 서울에 사는 많은 경주 사람들은 가끔 지나친 자부심에 빠진다. ‘서울에 볼 것이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경주에 비해 볼 것이 없다’는 말을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데 이럴 때는 정말 어이가 없다. 노천, 다시 말해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말을 어려서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세뇌당하듯 들은 경주사람들이기에 이해는 가지만 그들이 서울을 얼마나 알고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까 의문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은 정말 볼 것도 많고 볼 곳도 많다. 오죽하면 ‘서울 구경만큼 좋은 게 없다’는 말이 나왔을까? 경주사람들을 위해 좀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울은 궁궐만 해도 경주가 가진 전체 유적지만큼의 면적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경복궁이 넓어 봐야 얼마나 넓다고?’라고! 그러다 서울에 궁이 무려 5곳이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슬며시 겸손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서울에 궁궐이 5개나 된다고? 곰곰이 따져보면 창덕궁과 오래 전 동물원과 유원지였던 창경원이 떠오른다. 창경원도 궁이었나?하는 물음도 꼬리를 쳐든다. 여기에 ‘덕수궁 돌담길!’ 하면 또 ‘아!’ 하고 덕수궁이 있었다는 것도 떠올린다. 덕수궁이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억지로 만들어 놓은 이름일 뿐 사실은 경운궁이란 것을 아는 경주사람은 별로 안 된다. 그러면 또 하나 궁궐은 어딜까? 경희궁이다. 경희궁은 이름조차 낯선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도 어쩌면 이 책을 소개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조선왕조와 관련한 종묘와 사직, 궁을 중심으로 한 각종 대문과 성벽, 사대부들이 모여 살았던 인사동과 북촌,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다투던 한성 유적지, 경주의 남산과 이름이 같은 목멱산, 경주의 능과 달리 27대 왕이 정확히 누운 왕릉까지 조선왕조와 관련한 유적만 해도 차고 넘친다. 경주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경주의 많은 유적지들이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복원되고 재건되었던 유적이란 사실이다. 석조 유구를 제외한 목조 건물의 대부분은 실상 이름만 신라를 업었을 뿐 조선시대 유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조선의 궁은 창덕궁을 비롯해 많은 궁들이 임진왜란 이전부터 있었거나 혹은 임진왜란 이후에 새로 지어진 궁궐이란 사실이다. 다시 말해 지금 경주가 지니고 있는 건축술의 결정판들이 모두 서울에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기 경복궁은 흥성대원군이 국고를 탕진하며 새로 지은 것을 반 이상 헐어내다시피 한 채 조선총독부까지 설치되었고 창덕궁의 주요 건물들은 일본 고관이나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 선 친일파들의 건축 자재로 쓰인 사실, 창경궁은 궁 자체를 망가뜨려 동물원으로 희화시키는 등 우리 궁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말이다. 다행히 경복궁은 다시 재건되었고 광화문도 제 자리에서 제 모습을 찾았다. 일제의 잔재 총독부 건물도 파괴한 지 오래다. 기타 다른 궁들도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으로 조금씩 원래의 모습들을 회복했다. 그러나 이런 궁들을 제대로 다녀보지 못한 경주 출향인들에게 서울의 궁궐은 낯설어 보인다. 물론 경주사람들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서울 살면서 서울의 핵심인 궁궐을 모르는 서울시민들이 의외로 많다. 굳이 경주사람들에 국한시킨 것은 그나마 서울과 비교할 만한 곳이 경주밖에 없기에 그런 경주 사람들과 출향인들이 오히려 서울을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경주도 마찬가지지만 알고 봐야 제대로 보인다. 서울의 궁궐도 알고 보면 볼수록 녹아드는 곳이다. 우리 민족의 심성, 역대 조선의 왕들과 대신들이 궁궐을 지으면서 담았던 의외의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만나면 궁궐이 새로워 보이고 조선이라는 나라도 새롭게 보인다. 많은 궁궐 안내서들이 있지만 ‘쏭내관의 재미 있는 궁궐 기행’을 꼽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고고학자나 역사학자가 쓴 책이 아니고 궁궐에 의문을 가지고 궁금함을 스스로 풀어나가기 위해 열심히 자료를 찾아 쓴 송용진 작가의 시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반 대중이 궁금해하고 재미 있어 할 만한 이야기를 일반적 시각에서 모아놓았다는 말이다. 또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파고들지 않아 초등학교 고학년쯤만 되면 쉽게 읽을 수 있는 편한 책이다. 스스로 궁궐에 빠져 궁궐을 안내하는 쏭내관이 되었다는 작가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궁궐이 새삼스럽게 마음속으로 다가올 법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궁궐을 가보면 서울도 경주만큼 볼 곳이 많고 그 중 핵심이 궁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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