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기자가 쓴 경주최부자 이야기를 읽은 어느 독자분을 만났다. 그는 요즘 경주최부자 이야기를 관심 있게 읽고 있는데 지난주에는 뜻밖에 모르는 게 많아 읽기가 곤란했다며 해석을 요구했다.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 독자는 평소 영화를 자주 보지만 취향상 SF나 애니메이션, 그것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은 잘 보지 않아 그날 읽은 최부자 이야기에 나온 토르니 헤임달, 아스가르드, 바이프로스트, 묠리르 같은 용어들이 깜깜했다고 고백했다. 그럼 헐크나 어벤져스 같은 영화들도 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어벤져스-엔드게임’은 하도 사람들 말이 많아 넷플릭스에서 봤는데 무슨 소리인지 몰라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영화건 책이건 취향 따라 보고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다양한 장르에 익숙한 기자로서는 그렇지 않은 독자들이 조금은 ‘측은하게’ 여겨진다. SF의 경우, 영화가 주는 상상력은 많은 부분에서 그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질 때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굉장히 많아진다는 차원에서 실현 가능한 상상력이 총동원된 기발한 산물이다.
대표적으로 조지오웰의 명저 ‘1984년’에 등장하는 ‘빅 브러더’는 소설 상에서는 허구적인 전방위 감시체계지만 지금의 CCTV나 SNS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그 체계가 저급하다고 할 정도로 현실화 되었다. 각종 로봇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도 점차 현실화 되고 있다. 이미 ‘로봇대전’이라는 특화된 경쟁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고 드론이 주요 산업체나 전장을 누비고 무인 탐사선이 우주나 이웃 행성으로 떠나 활약 중이다.
그런가 하면 의인화된 애니메이션과 SF장르들의 영화는 중요한 철학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토이 스토리 같은 애니메이션은 가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형이나 장난감을 통해 천도교적 철학인 물성(物性)을 가늠해보게도 한다. 천도교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하늘처럼 생각하는 사상을 주장하는 한편 돌멩이나 책상 같은 일상의 자연이나 무생물적 대상들도 그 나름의 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토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형과 장난감들을 보고 나면 주변의 인형이나 장난감들을 소홀하게 보지 않게 되는 효과가 생길 정도다.
애니메이션을 기본으로 이를 발전시킨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은 온갖 세계의 신화와 전설을 현실화 시켜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상상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신화가 다분히 역사의 전개과정의 일부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차원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는데도 애니메이션 영화는 필요하다. 기자가 경주최부자댁 쪽문을 토르에 나오는 바이프로스트로 묘사했는데 토르는 다름 아닌 북유럽 신화의 주인공이다.
이런 소재를 발굴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만드는 디즈니, 마블, 픽사 같은 제작사들은 세계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대강자로 이제는 세계 각국의 기존 영화사들이 너나없이 줄대야 살아남을 수 있는 최고의 콘텐츠 회사가 되었다. 애니매이션 강국 일본은 일본에 존재하는 신사의 다양한 요정들을 상품화함으로써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작품들은 일본과 어린이뿐 아니라 전 세계에 확고한 팬층을 유지하며 지브리 스튜디오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전에 몰랐다가 SF와 애니메이션에 맛들인 어느 독자는 이전보다 훨씬 다채롭게 영화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이로써 취미의 영역이 눈에 띄게 넓어졌다고 좋아하기도 했다.
마침 최근 OTT방송 ‘디즈니 플러스’에서 만화가 강풀이 쓴 한국판 히어로물 20부작 드라마 ‘무빙’이 국내에서 엄청난 선풍을 일으켰고 세계인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인기에 힘입어 지난 10월 8일 부산국제영화제 ‘2023 아시아콘텐츠 어워즈 & 글로벌 OTT 어워즈’에서 무려 6관왕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대한민국도 디즈니나 마블, 픽사의 전유물로 알려진 히어로물을 자신감 가지고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 셈이다.
물론 이들 SF나 애니메이션 장르들에 굳이 익숙해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 인간의 상상력은 더욱 발전할 것이고 이를 실현할 컴퓨터 그래픽도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이들 장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재미있게 볼 영화는 어쩌면 점차 제한적이 될 것이다. 토르를 알아야 경주최부자를 이해하는 것도 그런 현상의 하나다. 무빙을 모르면 대화에서 왕따 당할 수도 있다. 어찌 소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