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란 무엇일까? 꿈이란 반드시 이루어야 가치 있는 것일까? 더 근원적으로 꿈을 꾸는 것은 꼭 어리거나 젊을 때에 국한된 것인가?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꿈을 잃게 된다. 어릴 때 거창했던 꿈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오그라들고 초라해진다. 이것을 조금 미화시켜 표현하면 ‘현실화’라 할 수 있다. 어릴 때의 막연했던 거창한 꿈이 자신의 능력과 현실을 알고 다양한 한계를 만나면서 구체화 되는 것이다.
어떤 꿈을 꾸었건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그 꿈은 어지간해서는 다시 꿀 수 없게 된다.
태어난 환경이 가난하거나 어려울수록 꿈은 일찌감치 더 먼 곳에 있다. 생존은 꿈보다 훨씬 가까운 문제고 심지어 꿈을 꿀 시간조차 사치스러운 것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다행히 운이 좋아 그런 환경을 피할 수 있었고 학교나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꿈이 반영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만 대부분 인생은 백화점에서 느긋하게 명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불편한 채 몸을 뒤틀면서 걸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결혼과 가족은 꿈과 멀어지는 또 다른 원인을 제공한다.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꿈꾸기보다는 안주하기를 바라고 어느샌가 자신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조차 잊어먹게 된다.
꿈꾸는 것은 무모하고 꿈이란 것 자체가 허황되다는 자기변명도 이때 생긴다. 이쯤 되면 꿈은 더 이상 가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반복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꿈의 박제가 일어난다. 다행인 것은 그렇다고 그게 딱히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비슷한 길을 가기 때문에 비교대상조차 없는 현실은 대부분의 꿈을 꿈(夢)으로만 한정시키고 만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일까? 위 세 가지 질문의 무의미함과 현실적인 한계를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통쾌한 영화가 있다. 브리티시 오픈의 유령(2021/크레이그 로보츠 감독)은 중년의 남성이 자신의 꿈을 찾아 불굴의 의지로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 명작이다. 더구나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주인공 모리스 플릿크로프트(마크 라일런스)는 조선소 크레인 작업자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은 모리스는 사생아를 둔 여인을 만나 결혼해 다시 쌍둥이 아들을 둔다. 자연스럽게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이 무슨 꿈을 가졌는지조차 모른 채 ‘조선소의 소모품’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만46세 되던 1975년, 모든 상황이 바뀐다. 아니, 상황이 바뀐 것이 아니라 똑 같은 상황에서 아내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권유를 받게 되며 꿈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들을 위해 헌신했으니 이제 자신의 꿈을 펼치며 살아 보세요”
그러나 이때쯤의 모리스는 자신이 오래전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골프경기를 본 모리스는 골프야말로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꿈임을 확신한다. 그리고는 무턱대고 1976년에 열린 브리티시 오픈에 도전장을 내밀고 당당히 우승을 노린다.
참가신청서에는 프로골프라 허위로 썼고 공식 스폰서까지 자신이 근무하는 조선소를 넣어서 쓴 모리스의 참가신청서를 받은 브리티시 오픈 주최측은 골프라고는 생판 모를 초보자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한 채 프로골프라 거짓으로 꾸민 신청서를 대충 보고 참가를 허락한다.
그때부터 모리스는 연습을 시작하지만 클럽에 등록도 하지 않았고 레슨도 받지 않은 채 대충 골프 클럽을 장만하고 대충 옷을 사입고 대충 골프화를 사서 연습을 시작한다. 그래도 연습만큼은 혼신을 다해서 한다.
과연 모리스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번 호에서는 이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매듭을 짓겠다. 참가허락서를 받아든 채 ‘이제 프로가 되는 것은 눈앞이다’며 ‘연습은 완벽에 가까워지는 길이다’고 외친다. 이 무모한 도전이 가져올 후폭풍을 즐기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다. 영화를 통해 우리 누구나 모리스 플릿크로프트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인생이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꿈은 누구가 꿀 수 있고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고 꼭 어리거나 젊을 때가 아니라도 좋다는 확신을 이 영화를 통해 배워보자. 분명한 사실 하나, 브리티시 오픈에는 분명히 유령이 나타나 모든 골퍼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