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만 19세 이상 모든 남성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 현행 기준상 대한민국 전체 군대는 남성 기준 현역병 50만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구절벽으로 인해 2035년부터는 이 인원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돌이켜보면 다산(多産)이 일반적이던 시대 군대는 건장하고 훌륭한 군인을 골라서 뽑을 수 있었다. 징병검사에서 갑을병정 나누어 최소한 갑에 해당하는 남성을 현역병으로 골라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1가구 2자녀 시대를 지나 1가구 1자녀 시대에 들면서 현역병 입영 대상이 급격히 줄었고 그로 인해 눈이 나쁘다거나 건강이 나쁘다거나 독자라거나 하는 등의 사유들이 현역병 제외 기준에서 사라져 어지간하면 군에 가는 시대가 되었다. 반면 병역 의무의 기간은 점점 짧아져 지금의 기준처럼 만 육군, 해병대 등 의무병의 경우 18개월로 정해져 오래전 군대생활 했던 사람들은 지금 군이 정말 전투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눈치다.
누구나 어지간하면 군에 가는 시대고 군에 들어간 병사가 제대로 전투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군에 가는 아들들은 이전보다 훨씬 귀한 아들이 된 것은 틀림없고 군에 복무하는 동안의 안전과 복지에 관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해진 시대가 되었다. 더불어 우리의 아들들과 딸들이 안전하게 복무할 수 있도록 국가가 모든 책임을 지고 안전을 담보할 의무 또한 언제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에도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예천에서 일어난 물난리에 휩쓸린 주민을 찾기 위해 투입되었다가 그 자신 급류에 휩쓸려 순직하는 사고가 일어나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국가는 채수근 일병을 일계급 특진 추서하고 국가 보훈법에 따라 향후 채 상병의 예우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채수근 상병의 죽음을 두고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군 관계자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혐의로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려는 사안을 두고 뜻밖의 논란이 일었다.
박정훈 대령은 국방부 장관의 승인까지 난 사안이 특정인 제외를 지시하며 하루아침에 바뀐 것과 경찰에 이첩한 자료가 외부에 누설된 것 등에 대해 외압설을 제기하면서 ‘집단항명수괴’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박 대령은 이에 대해 집단항명수괴는 사실무근이며 끝까지 정당함을 밝히겠다고 선언하고 나서 향후 이 시비가 어떻게 가려질지 주목된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지닌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요소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이 문구는 헌법 제34조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넷플릭스에서 상영하고 있는 드라마 디.피에서 모든 드라마 시작 전에 내건 ‘이끄는 문구’로 유명해졌다. 디피는 탈영병(Deserter) 추격( Pursuit)의 약자로 군의 경찰이라 일컫는 헌병대에서 탈영병을 추격하는 임무자를 뜻한다.
이 드라마 시즌2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하찮은 디피 일병이 자신에게 돌아올 탈영이라는 최대의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군내부에서 일어난 비겁한 은폐와 비리에 맞서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군 수뇌부는 군에서 발생한 사고를 축소하고 왜곡함으로써 피해자를 기만하는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비록 드라마에서의 일이지만 이와 비슷한 사건이 군의 곳곳에서 일어난 일을 수도 없이 보아온 국민들은 채수병 일병 관련 외압의 여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번 일이 철저히 규명되는 것을 어느 때보다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비단 채수근 상병에 그치지 않고 군에서 일어나는 과도한 군기와 국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군이 헌신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다. 채수병 상병이 국민을 위해 순직했는데 그런 채 상병 역시 당당한 국민의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정작 채수병 상병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가 마땅한 의무를 다 하고 있었는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혹여라도 그의 죽음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군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합당한 징계가 반드시 있어야 향후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채수병 상병의 헌신 역시 다시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위세 있는 외압도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사건을 보는 국민은 똑똑히 알고 있다. 이번 일이 공명정대하게 규명되어야 국가를 믿고 우리의 아들과 딸을 군대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