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통일을 얼마나 원하고 있을까? 연령대나 자라난 환경, 공부한 지식에 따라 대답이 다를 것이다. 엄연한 사실은 우리는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고 통일을 하건 하지 않건 북한과는 어떤 식으로건 상대를 인지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시간을 불안과 갈등을 빚으면서 살았고 아주 가끔은 막연한 희망의 불씨로 느끼면서 살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과 통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고민일 것이다. 이에 대해 차분하고 깊이 있게, 그러면서도 엉뚱하게 성찰한 책이 권은민 변호사의 ‘평양에서 재판하는 날’이다. 이 책은 판사 출신 권은민 변호사가 수필잡지 ‘에세이스트’에 ‘통일단상’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내용과 20년 이상 북한법을 연구하고 강의한 북한법 연주자로서 느낀 단상을 다섯 개의 장으로 묶은 것이다. 제1장 ‘새로운 세대의 탄생’은 통일과 남북문제가 사람마다, 세대마다 다양한 관점을 가졌음을 소개했다. 북한 연구가 2세대로서 언젠가는 북한에서 북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열망은 권은민 변호사의 진지한 학구열을 짐작하게 한다. 북한 출신 아버지를 둔 어느 아들을 통해 원천적인 분단 시기의 북한문제, 북한이 핵실험 하던 날 아들과의 대화와 좌절감이 ‘과연 북한을 도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와 이어진다. 탈북 학자 주승현 씨가 쓴 책 ‘조난자들’과 축구선수 정대세 선수의 갈등, 삶의 굴레를 져야 하는 북한의 여성 이야기에선 엄연히 실존하는 북한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현상을 꼬집는다. 제2장 ‘지도 없이 길 찾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통일에 대한 시간적 목표를 세우자는 것이다. 1단계 2030년까지 상대지역에 1000명 이상 체류시키기. 2단계 2045년은 분단 100년인 만큼 통일한국의 원년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세대간,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간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 통일의 사례를 우리의 통일 지도로 생각한 것에 공감된다. 독일통일 시 동독 인구가 26%인데 비해 북한은 50%나 되는 만큼 통일과정에서 치러야 할 진통과 비용이 훨씬 클 것이니 훨씬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남북 화해 무드이던 2018년, 삼지연 악단에서 느낀 남북 간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을까? 사드 배치와 관련한 한중일 학자간 회의 후 중국학자가 ‘사람이 힘을 쓰려면 허리가 든든해야 하는데 한반도 지도를 보면 허리가 잘려 있다’며 교통과 물류의 단절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현실적이다. 제3장 ‘평양에서 보낸 하루’는 권은민 변호사가 바라는 북한에서의 활동을 상상으로 그린 것이다. 남북한의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 서로 다른 법을 비교하면서 사건을 제시하고 해결하는 것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2030년에 펼쳐질 평양의 하루는 흥겹고 자유롭다. 권 변호사는 내친걸음에 평양사무소에서 1년을 보내기도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남한과 다른 북한의 법을 어떻게 조화시킬지의 고민이 엿보인다. 할아버지가 된 권은민 변호사는 마침내 통일시대를 살고 있다. 평양에 살며 손자에게 통일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권은민 변호사의 미래가 숙연하다. 손자는 평양에서 경주행 열차를 탈 모양이다. 제4장 ‘교과서 없는 수업’은 권은민 변호사가 대학원에서 북한법을 강의한 이야기와 북한연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았다. 남북한 간의 토지개혁을 설명하기 위해 황순원의 소설 ‘카인의 후예’를 교제로 추천한 것이 기발하다. 남북경협을 위해 어떤 법과 제도가 필요할지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는 과제를 제시한 것은 문제를 포괄적이고 유연하게 다루는 권은민 변호사다움이 녹아 있다. ‘통일은 움직씨, 명사도 형용사도 아닌 동사’ 단원에서 ‘친척 만나기도 꺼리는 요즘 세대들은 통일에 관심이 적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면서 권은민 변호사는 통일에는 민족을 넘어서는 새로운 감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통일을 동사로 두고 인수분해해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모든 영역에서 점검하고 가능성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제5장 ‘무하국 이야기’는 권은민 변호사가 쓴 꽁트 혹은 우화 모음이다. 남북한을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로 표현했을 뿐 이 나라가 갈라진 과정과 갈등, 쌍방 정치지도자들의 강압과 세뇌, 상호 간의 불신과 적대감, 궁극적인 이해와 포용들이 이야기의 구조다. 여기에 등장한 금자를 찾기 위해 땅을 파는 무하국 청년은 결국 권은민 변호사 자신일 것이다. 통일에 대한 논의가 담긴 책이라고 해서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벗어버려도 좋겠다. 오히려 통일과 남북한 간의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가에 놀랍다. 통일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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