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은 독립운동가 몽양(夢陽) 여운형 선생(1886~1947)이 서거한 지 76년 되는 날이었다. 여운형 선생의 생가가 있는 경기도 양평군은 선생의 탄생 137주년을 맞아 ‘몽양, 독립의 여정’이라는 주제로 양평군 생가와 기념관에서 특별전시회를 가졌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독립운동’하면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을 떠올린다. 그러나 국내에서 독립운동 조직을 꾸준히 이끌면서 언론,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가장 핵심 인물은 여운형 선생이었다.
여운형 선생은 비단 국내에서만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 상하이 임시정부 창립에도 깊은 관련을 맺었으며 상하이, 일본, 꽝저우, 모스크바,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톡, 마닐라, 싱가폴 등을 다니며 대한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다녔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한일병탄의 정당성에 대해 연설하겠다고 거짓 약속한 채 일본에 들어가 대한독립의 의지를 연설하는 등 일본을 혼란에 빠뜨려 당시 내각이 책임지고 사퇴하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무장 투쟁에만 역점을 둔 것에 비해 여운형 선생은 교육, 언론, 스포츠와 문화 활동을 장려하면서 국민의 정신과 저력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베를린 올림픽에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를 보내 국민적 각성을 일으켰고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자신이 대표로 있던 조선중앙일보를 폐간하기도 했다.
특히 여운형 선생은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1944년부터 국내에 조선건국동맹을 구성해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연계했으며 해방과 동시에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구성해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해오던 전국의 인민위원회와 손잡고 국가 전역의 치안을 일사불란하게 다잡았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와 미군이 진주해 들어오면서 건준은 해체되고 치안을 담당하던 인민위원회는 모두 해산된다.
해방 후 독자적인 기반이 약하던 이승만은 미군을 등에 업고 과거 친일 인사들과 친일 경찰, 일제에 복역하던 군인 등을 주축으로 남한 내 새 정부를 꾸려나간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제대로 일제 청산을 해보지도 못 한 채 남북분단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또 한쪽에서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대거 귀국하며 바야흐로 치열한 권력 암투가 벌어진다. 그러나 해방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여운형 35, 이승만 21, 김구 18, 박헌영 16, 김일성 9, 김규식 5로 나올 만큼 여운형 선생의 국민적 신뢰와 지지도는 그 어떤 독립운동가들보다 높았다.
그러나 좌파 운동가였다는 문제가 이승만, 김구 양자 모두에게 걸림돌이었다. 좌익과 친한 것이 독립운동의 방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여운형 선생은 해방 후 미군정의 진주를 반대하고 신탁통치를 반대했다. 그러나 신탁통치가 가결되고 남북한 각각의 정부가 수립되는 상황에서 이념에 대해 관대했던 여운형 선생은 좌우합작정부를 구성하자고 주장, 상하이 임시정부파인 김구 선생, 중도세력에 적대적이었던 박헌영 등 좌익 세력, 미군을 등에 업은 이승만 등의 눈밖에 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운형 선생은 1947년 7월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이라는 청년이 쏜 총탄에 맞아 생을 마감한다. 당시 한지민의 단순 범행으로 매듭지어진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끝난 후인 1974년 여운형 암살의 배후인 4인이 나타나며 당시 신익희 선생과 김구 선생과도 관련된 ‘백의사’란 우익단체의 사주인 것처럼 해석되기도 했다.
여운형 선생이 국민적 신뢰와 영향력을 가진 독립운동가였지만 일반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를 좌익사상가로 백안시했기 때문이다. 여운형 선생이 독립운동가로서 제대로 인정받고 늦게나마 국민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된 것은 노무현 정권이던 2008년이다.
선생은 소련 방문시 트로츠키의 연설에 감명받아 연설에 각별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장한 체격에 잘 생긴 얼굴, 카이젤 수염의 카리스마까지 더한 선생의 연설은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생은 당시로서는 매우 자유로운 삶을 산 것으로도 알려졌는데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의 사생활로 인해 그를 폄하하는 일도 잦았다. 여운형 선생이 남긴 어록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있다.
“혁명가는 침상에서 죽는 일은 없다. 나도 서울 한 복판에서 쓰러질 것이다”
몽양 여운형을 검색하면 다양한 책이 나온다. 어떤 것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