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1941~) 감독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가 인정하는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다. 애니메이션에 관한 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작가이자 작품성에서도 다른 누구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의 50대 이상 세대라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한두 편은 반드시 보았을 세대이며 그 이후 세대라면 다양한 작품을 만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1978년 ‘미래소년 코난’으로 데뷔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평화와 공존, 자연에 대한 존중, 생명사상 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이미 닛폰 애니메이션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알프스 소녀 하이디’, ‘프란다스의 개’,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간머리 앤’ 등에 깊이 관여하며 그의 작품성을 세계에 알렸다. 때문에 1985년 ‘지브리 스튜디오’를 창립한 이후 만든 많은 작품에서 유사한 풍의 작화들이 등장해 보기만 해도 지브리임을 알게 했다.
‘지브리’는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녀 배달부 키키, 천공의 성 라퓨타 등 주옥같은 명작들로 세계 어린이들과 동심을 품은 어른들을 감동시켰다. 특히 ‘지브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뉴에이지 음악의 선구자 ‘히사이지 조’의 아름다운 음악은 지브리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한다면 단연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이다. 영국 소설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지브리의 철학과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는 명작이다. 무한한 상상력 속에 정령과 살벌한 전쟁이 등장하고 당연하게도 전쟁의 무의미함과 자연에 대한 동경도 깃들어 있다.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상상을 초월한다. 갑자기 노인이 된 소녀, 시공을 초월하는 소년, 살아움직이는 허수아비, 마법의 불과 움직이는 성..., 이런 요소들이 잘 뒤섞여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어느 날 갑자기 황야의 마녀의 저주에 걸려 할머니가 되어버린 소피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마음은 동심인 채 노인의 몸으로 변한 소피는 평화를 추구하지만 전쟁으로 물든 세상을 상징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불타는 환경을 상징하기도 한다. 소피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울과 불의 악마 마르클, 순무 허수아비도 제각각 상징하는 바들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는 굳이 단정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이게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주는 ‘나름대로의 해석’이란 선물이기 때문이다.
극 중에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대사들도 눈에 띈다.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다’는 하울의 말과 그것을 반박하면서 ‘나는 한 번도 아름다워 본 적이 없다’는 소피의 대사는 아름다움에 대한 극명한 대립을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더 가치 있는지를 설명하는데 이처럼 적절한 대사는 없을 것이다.
전쟁을 두고 ‘적이건 우리편이건 다 같다. 모두 살인자들’이라고 외치는 하울의 대사 역시 의미심장하다. 소피를 지키기 위해 위험한 전투에 나선 하울과 그 하울을 지키기 위해 거꾸로 위험한 도전을 감행하며 ‘하울은 겁쟁이로 사는 게 나아’라고 외치는 소피의 대사도 인상적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이 대사들을 적용한다면 세상의 모든 전쟁들이 일순간에 의미를 잃고 중단될 법한 명대사다.
단순하게 아이들에게나 어필할 법한 애니메이션이 이 정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이 애니메이션이 결코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명작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본 사람들이라면 마침 지금 현재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모털엔진(2018/크리스천 리버스 감독)’의 설정이 일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빼다박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런던을 하나의 거대한 움직이는 성으로 표현한 모털엔진의 모티브는 아무리 봐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 확장판이다.
마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지난 7월 14일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만든 영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일본에서 지브리 사상 두 번째 흥행을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작품에 대해 찬반양론이 팽팽한 것은 충분히 예상된다. 지브리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상상력을 발휘해서 보면 신나고 재미있는 작품이 고정된 어른의 시각으로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나빴던 대일 국민감정과 상관없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도 모른 채 그의 작품에 영향받아온 50대 이전 우리 국민에게는 또 하나의 선물이 기다리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