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슬란드의 고래 관광
‘아퀴레이리’는 이 나라 제2의 도시요, 동쪽 해안에 위치하는 항구 도시로 수산업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수도인 레이캬비크에서 약 400km 떨어져 있어, 우리나라 같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쯤 되며, 그쪽 1번 도로를 타고 달립니다.
이 도시는 높은 산으로 둘러있고, 한쪽 끝에 바다가 피오르드(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주변 산들에 구름이 띠를 형성하고, 꼭대기를 따라 빙설로 하얗게 덮여있어 낭만적인 자연환경을 이루고 있어요.
이곳의 주요 볼거리는 바다에 나가 고래구경을 하는 것입니다. 돌고래, 흰 긴수염고래 등 20여 종의 고래가 이 주변에 서식하고 있어, 4월~9월 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튿날 내항에 있는 투어 센터에 나가 유람선에 올랐습니다. 30여 명의 관람객이 1시간 동안 잔뜩 기대를 하며, 바다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겨우 서너 마리 정도가 수면에 올라 숨만 길게 쉬고, 다시 바다 속으로 숨어버려 투어가 시원치 않았어요, 선장이 미안한지 고래가 이 배에 탄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조크를 하고 다른 곳으로 선수를 돌렸습니다.
(2)후사비크의 고래 투어
‘후사비크’는 인구 2000여명의 해변 마을인데, 아퀴레이리에서 좀 떨어진 곳입니다. 고래관광으로 유명한 곳이며, 고래 박물관도 있어 여기 고래 구경은 괜찮았어요. 아이슬란드에서 최초로 고래관광이 시작된 곳이라고 하는데, 이 해역에서 고래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이 많이 서식한다고 해요. 한적한 해안 마을로 고래 투어도 좋았지만, 북대서양의 푸른 대양을 보며 피오르드 부근의 빙산의 만년설과 초원과 해안이 만드는 아름다운 경치가 무척 좋았습니다.
(3)아이슬란드의 식량, 대구(大口) 이야기
①아이슬란드에서 대구의 역할 대구는 아이슬란드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며, 이곳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이기도 합니다.
기간산업인 수산물 수출액의 40-50%를 차지한다고 하니, 대구가 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콜럼버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신대륙을 발견한 바이킹족들이 고향 노르웨이를 떠나 대구 떼를 찾아온 곳이 아이슬란드라고 합니다.
대구가 영양도 많고, 성질도 유순해서 잡기도 쉽고, 1미터 정도의 크기에 무게가 70-80㎏이어서 식량으로 적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겨울철에 대구를 잡아, 분화지구에 대구를 말리는 덕장도 만들고, 건조기술도 개발하여 식량으로 비축하여 북유럽 등에도 수출을 했다고 합니다. 해안 마을에는 자기 동네 고유의 대구박물관도 있어 당시의 발전사를 기록하고 있어요. 고래를 잡으려다가 좋은 식량감인 대구를 발견한 이들은, 대구포로도 말려 세계에 수출하고 있어요.②아이슬란드의 대구 전쟁 이야기 대구로 인하여 3차례(1958-1976)에 걸쳐 영국과 아이슬란드 간에 일어난 전쟁을 ‘대구 전쟁(cod war)’이라고 합니다. 아이슬란드 근해에 대구가 많이 잡히자 영국이 이를 탐내, 무단 어획이 자주 생기면서 어업권 주장에 따른 영해권 논쟁이 발생한 것입니다.
영국 해군과 아이슬란드 경비정 충돌로 두 나라가 단교 직전까지 갔습니다. 군함이나 무기 전쟁은 아니었지만, NATO 중재로 영국 어선이 아이슬란드 200해리 밖에서 3만톤의 대구를 잡을 수 있도록 협약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의 식량 보전을 위해 작고 빈약한 나라가 대영제국을 상대하여 세 차례나 버틴 것은, 바이킹 후예들의 용맹스러움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나라는 대구뿐 아니라 청어, 홍어 등도 많이 잡혀 세계적인 수산물 수출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사&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