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기록문화를 이어가는 배첩공방 ‘부치부치’가 최근 경주에 오픈했다. 기존 표구사의 판타지에 얽매이지 않는 기획이 돋보이는 부치부치공방은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성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대표 제다은 씨는 30대 초반의 젊은 감각으로 우리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배첩공방 창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가는 제다은 대표를 만나 부치부치공방에 대한 소개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배첩이라는 공예가 생소하실텐데 글이나 그림 등 종이에 그려진 작품이나 기록물을 족자, 두루마리, 책, 병풍 등으로 만드는 작업을 말해요.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배첩기술로 만들어진 두루마리 책이죠. 배첩은 근대 이후 일제 강점기 영향으로 ‘표구’라는 단어로 더 잘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배첩’ 또는 ‘장황’으로 불렸고,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02호로 등록돼 있는 전통공예입니다”
배첩을 배운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제 대표의 본래 직업은 디자이너다. 그렇다보니 그녀의 공방에서는 기존 표구사처럼 작품 의뢰를 받기보다는 배첩을 기반으로 여러 실험을 거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제품 디자이너에서 시각디자이너로 전향한 그녀는 새롭게 디자인 이론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참고도서가 서양 디자이너가 쓴 것임을 발견하고, 국내 디자이너들이 한국의 전통 문화와 가치를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가 왜 서양 이론만 배워야 하는지 의문에서 전통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시각디자인 분야와 전통 배첩장 사이의 독특한 매력을 찾게 됐고, 이로 인해 제 시각디자인에 대한 관심사가 배첩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게 된 그녀는 공예 기술과 장인의 연구를 경험하며 ‘배첩장’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론적인 공부만으로 한계를 느낀 그녀는 문화재수리기능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 배첩 교육을 2년간 이수하고 문화재수리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됐다고.
이를 통해 그녀는 한국 전통 문화의 가치를 인식하고 디자인에 적용해 고유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저는 디자이너로서 현대 기술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그래픽 인쇄물과 편집 디자인을 전통적인 배첩과 결합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한지로 만든 사진책 클래스를 기획했고, 앞으로 제가 쓴 글을 편집해 전통 책 형태로 독립 출판물도 만들고 싶습니다”
↑↑ 제다은 대표.
그녀는 전통의 배첩을 알리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전통성이 강조된 어려운 단어를 삼가하고 현대인에게 다가가기 쉬운 단어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치부치’라는 이름을 지을 때도 이러한 생각에 기인했습니다. 전통을 진지하게 다루기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전통 풀을 사용해 종이나 비단을 ‘붙이다’라는 의미를 담아 부치부치라는 이름을 창안했습니다. 겉모습은 전혀 전통공예를 연상케하지 않으며, 귀여우면서 가벼운 이미지가 강조되는데, 그 안에 배첩의 핵심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의미 있는 공방이 되죠”
연말에는 ‘다이어리’, ‘트래블 노트’, ‘필사노트’, ‘태교 일기’ 등 컨셉별 다양한 책 만들기 클래스를 오픈할 예정이라는 제 대표는 기회가 된다면 아이디어스 등 온라인 플랫폼에도 입점해 개인 책을 편집해 제작하는 일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단기 클래스와 판매 상품은 대중의 수요와 눈높이에 맞춰진 것이라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장기적인 목표는 민화, 서예 등 지역의 전통미술 작가들에게 배첩기술을 전수함으로써 배첩이 자연스럽게 계승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부치부치공방 제다은 씨는 대구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 무형유산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학 졸업 후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한국전통문화교육원 배첩기초 및 심화과정을 이수하고 문화재 수리기능자 표구공 제11018호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