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앞날을 밝혀준다. 기술 쪽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 편의 피자 광고가 그 사실을 증명해 냈다. 과학의 도움으로 반짝반짝해야 할 우리 미래가, 뭔가 암울하고 기괴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 4월, 레딧(Reddit)에 30초짜리 광고가 하나 떴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은 하루에 5200만 명(올 3월 기준) 이상의 사용자가 이용할 정도로 유명한 미국 사이트다. ‘페퍼로니 허그 스팟(Pepperoni Hug Spot)’이라는 이름의 피자다. 영어가 짧아서 작명의 의도는 잘 모르겠다. 아마 친구들과 페퍼로니 피자를 먹으면서 얼싸안는(hug)? 뭐 그런 좋은 분위기(spot)를 지향하려는 의도 아닐까 추측해 보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시작은 이렇다. “인생 최고의 피자를 먹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너무 차분(?)한 성우의 목소리가 살짝 거슬렸지만, 아무튼 여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그 이후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광고에 나오는 사람들 손과 입이 죄다 이상하다. 피자를 먹는 입 모양이 수시로 변한다. 피자를 들고 있는 손이나 손가락도 자꾸 변한다. 눈치채셨겠지만 ‘전형적으로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티가 난다. 피자를 즐기는 모습을 구현하고 싶었겠지만 마분지 재질의 피자와 그걸 움켜쥔 여섯(!) 개 손가락의 손과 이상하게 우그러진 얼굴들만 보인다. AI가 이끈 ‘깊은 계곡’에 제대로 빠져버린 느낌이다.
인공지능이 만든 최초의 피자 광고는 많은 기술적인 도움으로 가능했다. 먼저 스크립트 작성은 챗GPT가 담당했다. 그래서일까, 대본이 너무 심심하다. 피자 맛을 모르는 AI라서 그렇지 싶다. 등장인물과 피자, 가게 외관 등의 이미지는 모두 미드저니(Midjourney)로 제작했다. “이렇게 저렇게 그려줘!” 하고 텍스트로 명령을 내리면 미드저니 같은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이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이제 그림은 그리는 게 아니라 ‘쓰는’ 시대다. 비디오 편집은 런웨이(Runway)가 담당했다. 피자나 사람 이미지로 동영상 효과를 내려다보니 완성도, 자연스러움과 정교함에서 문제가 터진 거다. 음성 더빙은 일레븐 랩스(Eleven Labs)의 도움을 받았고, 영상 편집과 광고 제작 전반적인 작업은 어도비 사(社)의 애프터 이펙트(Adobe After Effects)로 마감했다.
촬영이나 더빙 없이 이 모든 과정을 오로지 인공지능에 맡길 생각을 한 사람은, 피자 레이터(pizza later)라는 가명의 제작자다. 그는 인터뷰에서 “모든 과정을 AI로 제작했다. 이걸 만드느라 내 인생의 3시간을 허비했다.”라고 했다. 완성도는 떨어져도 반응이 압도적인 걸 보면 홍보라는 측면에서는 대성공이다. 세계 최초의 광고에 달린 댓글이 이를 증명한다. “창의성이라면 이제 할리우드도 못 따라갈 수준”, “완전 추상 예술이다. 피카소가 환생해도 실업자가 될 듯”, “손가락이나 입을 보고 있으면 아직 멀었다 싶지만, 앞으로는 알 수 없지...” 등이다. 경쟁 업체(!)가 될 뻔한 피자헛은 “심장이 쫄깃해졌다”는 댓글을 남겼고, 트위터의 CEO 일론 머스크도 폭발하는 머리 이모티콘을 달았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만능은 아니구나’ 하는 분위기다. 작년 연말에 선을 뵀던 감자칩 튀김기 광고가 다시 역주행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이 광고는 주 고객층이 취업준비생이나 노총각·노처녀라서 흥미롭다. 보통 연말연시가 되면 가족 친지들의 오붓한 식사 자리가 마련된다. 문제는 가족 모두가 즐거운 건 아니라는 데 있다. 할아버지나 삼촌 등 꼭 눈치 없이 묻는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장가를 안 가니?”, “제발 올해는 취직하길 바래” 핵폭탄급 질문(본인들은 관심이라고 우기지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갑자기 얼어붙는다. 이상 분위기를 감지한 인공지능 감자칩 튀김기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신선한 감자튀김 몇 개를 떨어뜨린다. 효과음과 함께. 그러면 주눅 든 조카나 손녀에게서 김이 모락 나는 감자칩으로 시선이 확 옮겨간다. 잔소리하던 입 안에 감자튀김을 톡 하고 집어넣으면 분위기는 다시 고소해진다. 맛있는 건 못 참는 본능을 이용한, 소위 ‘관심 돌리기’ 기능이 탑재된 ‘감자 튀김기’다. ‘비혼’, ‘취업’ 같은 키워드를 미리 입력해 두면 대화를 실시간으로 스캐닝하면서 대화를 허용할지, 분위기를 전환할지를 스스로 결정한다. 이제 식탁 위 평화까지 책임지는 걸 보니 인공지능의 내일은 왠지 더 희망적일 것 같다.